개항기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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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강상원(康相元)은 1872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최익현의 의병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박대하의 권유를 받고 자신회(自新會)에 가담하였다. 자신회는 나철(羅喆)[1863~1916], 오기호(吳基鎬)[1863~1916] 등이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기 위해 1907년 2월 조직한 비밀 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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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강이봉(康伊奉)은 188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구억리에서 태어났으며, 1909년 당시 직업은 무당이었다. 1909년 1월 11일 강이봉은 유종환이 지휘하는 의병의 일원으로 경상남도 안의군[현 거창군] 북상면 치내동 이장 이씨 집에 가서 총 1정과 의류 등을 징발하였다. 1월 22일에는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조치리 최만오(崔萬五)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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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김백원(金百元)[1880~?]은 188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에서 태어났으며, 정미의병 당시 문태서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의병에 합류할 당시 김백원은 농업에 종사하였다. 문태서는 1908년을 전후로 덕유산,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장수 지역에서 의병을 모아 일본군 상대로 전투를 전개하다가, 점차 활동 범위를 충청도, 경상도 지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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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김부개(金富介)[1881~?]는 1881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서 태어났으며, 정미의병 당시 문태서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처음 덕유산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은 문태서는 스스로를 ‘호남의병’으로 부르면서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장수 지역 일대로 활동 무대를 확장하였다. 문태서 의병부대는 지금의 장수군 계북면 지역과 덕유산 등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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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김진철(金鎭哲)[1848~1909]은 1848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어상(魚商)을 하다가 60세인 1908년 3월에 서주일(徐周一) 의병장 의진에 참여하였다. 서주일[본명 서종락]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거병하여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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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 문태서(文泰瑞)[1880~1913]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장구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아버지는 문병현(文炳鉉)이다. 문태서의 본명은 문태현(文泰鉉)이며, 문태진(文泰珍)·문태수(文泰洙) 등으로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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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의병. 박동식(朴東植)[1875~1914]은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충실(朴忠實)이고, 호는 춘실(春實)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비분강개하여 “국가 존망의 이때 모두 분발하여 사심을 버리고 나라를 구하자.”라는 내용의 격문을 돌렸으며, 격문을 보고 모여든 의병 52명과 함께 전북특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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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방치경(方致京)은 1860년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1907년 고종이 헤이그밀사 사건을 구실로 강제 퇴위당한 것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막대한 재정이 낭비된다는 이유로 군대까지 해산당하자, 반발한 군인들도 의병 전쟁에 참여하였다. 충청북도에서는 조석우(趙錫祐)가 일본의 침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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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이향운(李香雲)은 186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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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임해준(任海俊)[1865~1935]은 1865년 7월 30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본이 헤이그밀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자, 전국 각지에서 정미의병(丁未義兵)이 봉기하였다. 이때 임해준은 의병장 장운식(張雲植)의 휘하로 들어가 충청북도 옥천과 충청남도 금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임해준은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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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장선군(張先君)은 1877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을 당하자, 군인이었던 문태수(文泰洙)[일명 문태서(文泰瑞, 文太西)]는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에서 봉기한 후 덕유산을 근거로 영남, 호남, 호서 일대에서 의병부대를 이끌었다. 1909년이 되자 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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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장한갑(張漢甲)은 186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본이 고종을 강제로 폐위한 데 이어 대한제국 군대까지 강제 해산시키자, 문태수(文泰洙)[일명 문태서(文泰瑞, 文太西)]는 전북특별자치도 무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문태수는 덕유산을 근거로 하여 충청북도, 전북특별자치도,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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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최점록(崔點錄)은 187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를 계기로 전국에서 봉기한 의병은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활동이 더욱 격화하였다. 이때 문태수(文泰洙)는 덕유산을 근거지로 주변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당시 최점록은 1908년 10월 28일[음력] 문태수의...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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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애국지사. 이종학(李鍾學)[1869~1907]은 1869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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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애국지사. 홍범식(洪範植)[1871~1910]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충청북도 괴산 출생이다. 자는 성방(聖訪)이고, 호는 일완(一阮)이다. 풍산 홍씨는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 집안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 노론 가문이다. 할아버지 홍우길(洪祐吉)은 한성부판윤, 이조판서를 지냈고, 아버지 홍승목(洪承穆)은 병조참판, 궁내부특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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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애국지사. 황성주(黃聖周)는 1879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조정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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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군 출신이거나 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일제의 가혹한 압제와 수탈에 대항해 금산 지역에서는 많은 의사(義士)들이 의병활동, 3·1운동 및 다양한 형태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김용중, 송철, 임영신, 유진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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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구호열(具鎬烈)[1899~1940]은 1899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에서 태어났다. 구호열은 1919년 3월 초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해 듣고, 김용술, 임승환 등의 금산면 청년들과 함께 금산읍 장날에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2일 밤 김용술과 임승환은 김용술의 집에서 만세 시위의 취지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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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19년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만세 운동은 금산읍 장터를 중심으로 벌어진 3월 23일 시위였다. 이후 3월 25일과 26일에 걸쳐 제원면과 금산 읍내 남산 아래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이어 3월 28일에는 금산읍 장터에서 재차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김봉준(金奉俊)은 3월 28일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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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부대는 190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에서 태어났다. 1928년 6월 전주공립농업학교의 마츠모토[松本]·마와타리[馬渡] 양 교사가 한·일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공학제하에서 한국 학생을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하였다는 이유로 2학년이 중심이 된 동맹 휴학이 발생하였다. 학교 당국은 12명을 퇴학 처분하고, 경찰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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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성학(金聖學)[1920~1945]은 192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에서 태어났다. 1942년 8월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면에서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인 연산국수동맹(連山國粹同盟)에 가입하였다. 국수동맹은 일본 도쿄에 본부를 둔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항일 비밀 결사 조직이었다. 연산국수동맹은 1942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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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영곤(金榮坤)[1925~1992]은 192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에서 태어났다. 1940년 서울의 성동상과학교에서 『순애보(殉愛譜)』·『흙』 등을 읽고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같은 고향 출신 김태영과 교우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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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영호(金永浩)[1881~1941]는 1881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복수면 곡남리 앞길에서 도로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정재철이 대전 시장의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오연구 등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헌병이 제지하였으나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유영준이 참가하여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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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용중(金龍中)[1898~1975]의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일택(金逸澤)이고, 어머니는 박순화(朴順和)이다. 2남 1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7세에 처음 결혼하였고, 미국으로 이주한 뒤 김형순(金衡珣)의 맏딸 김영옥[영문명 Mary Ann Kim]과 1934년 다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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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일남(金一南)[1888~1950]은 1888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금산 청년 대표를 자임한 김용술(金用述)·임승환(任勝煥) 등이 계획한 만세 시위의 주도자 중 한 명이다. 1919년 3월 22일, 김용술·임승환 등은 금산 청년 대표 명의로 격문을 작성하고 금산면 서기 김종구에게 부탁하여 150여 매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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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종구(金鍾九)[1894~1963]는 1894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금산읍 3·1운동 당시 금산면 서기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22일 밤, 금산읍 상옥리에 거주하던 김용술(金用述)이 자신의 집에서 임승환(任勝煥)과 함께 「금산경고(錦山警告)」라는 격문을 지었다. 「금산경고」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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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주한(金周漢)[1882~1959]은 1882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마장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날품팔이로 생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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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태선(金泰善)[1924~2003]은 1924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운정태선(雲井泰善)이다. 김태선은 1939년경부터 일제의 강제 노동 정책과 식량 공출에 반감을 갖고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1944년 3월부터 6월까지 김태영, 금원정길(金原正吉) 등과 함께 일본 경찰 암살, 일본군 병력 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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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태영은 1924년 3월 25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금전태영(金田泰碤)이다. 1942년 3월 21일 해군애국작업단원(海軍愛國作業團員)으로 남태평양 오리마이 제도(諸島)에 끌려갔다. 열악한 작업 환경 속에서 일하던 김태영은 병을 얻어 1943년 2월 귀국하였다. 귀국 후 일제의 강제 식량 공출에 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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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김학술(金學術)[1897~1932]은 1897년 11월 14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용술(金用術)이다. 1919년 2월 양봉식(梁鳳植)이 민족 대표의 한 사람인 정춘수(鄭春洙)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아 옥천, 무주, 금산 등지에 배포한 것을 계기로 금산 지역에서도 만세 운동의 분위기가 서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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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8일 금산읍 장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지기 전, 일제 당국은 만세 운동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곳곳에 경찰을 배치하여 주민 동향을 감시하였다. 경찰의 감시 때문에 오후 6시까지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지만, 상인들이 일과를 마무리하고 짐을 정리할 즈음 갑자기 수백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 운동을 벌였다. 밤에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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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류재영(柳在榮)[1919~1997]은 1919년 8월 6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남애(南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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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문대식(文大植)[1923~1973]은 1923년 1월 11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배우자는 전연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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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래은(朴來殷)[1919~2005]은 1919년 9월 25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박래성(朴來城), 창씨명은 아오키 시게오[靑木茂雄]이다. 1936년 미국인이 경영하는 기독교계 학교인 전주신흥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6월 5일 전주사범학교 강습과에 들어가 1937년 3월 20일 수료하였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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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박영규(朴偀圭)[1896~1940]는 1896년 9월 5일에 태어났고,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제원리에 거주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금산 지역까지 확산하자, 박영규는 자신이 거주하던 마을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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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찬웅은 1919년 11월 14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외부리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미야모토 긴유[宮本贊雄]이다. 유년 시절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으나,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한 것이 확인된다. 당시 대구사범학교는 일본인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 교육으로 조선인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하였다. 따라서 기숙사 내부에서 일본어 사용을 거부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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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변희조(卞熺朝)[1895~1943]는 1895년 11월 2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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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송철(宋哲)[1896~1986]은 1896년 1월 23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송철(宋喆) 혹은 송휘규(宋彙圭)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송철의 아버지는 송학운(宋學運), 어머니는 파평 윤씨 사람이며, 7남매 중 3남이다. 부인은 로즈 송(Rose Song)이고, 아들로 레오 송(Leo Song), 유진 송(Eugene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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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신성오(申成五)는 1883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황해도 지역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3월 1일에는 서울과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해주, 옹진, 사리원, 황주 등지에서 선언서가 배포되었다. 2일부터는 황주 읍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위운동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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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양태용(梁太容)[1879~1937]의 본관은 남원이고, 자는 치도, 호는 해파(海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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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엄창수(嚴昌樹)[1923~1989]는 1923년 2월 26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금산공립보통학교[현 금산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전주농업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이후 아버지에게 금은 세공업을 익히고 1941년부터 읍내 시계점에서 시계 수선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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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오연구(吳然九)[1876~1953]는 1876년 8월 12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오연구는 수영리 주민들과 복수면 곡남리 도로 수선 부역에 동원되었다. 휴식 시간에 정재철(鄭在轍)이 대전에서 일어난 3·1운동 상황을 이야기하고, 금산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호소하며 만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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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유영준(兪英濬)은 1919년 3월 31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인물 중 한 명이다. 1919년 3월 금산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확산하던 와중, 곡남리에 거주하던 김영호, 정재철, 오연구 등은 도로 부역에 동원되어 일하다가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즉석에서 만세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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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이응숙(李應淑)[1879~1931]은 1879년 10월 2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두지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행적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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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이일남(李壹男)은 1925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경원일남(慶原壹男)이다. 유년 시절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1942년 전주사범학교를 다니던 중, 동지들을 규합하여 비밀 결사 우리회를 조직하고,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등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3년에는 만주 지역 독립군과 접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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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이일만(李一萬)[1891~1961]은 1891년 10월 13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보광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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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이재선(李在善)[1887~1937]은 1887년 6월 13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보광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이반옥(李半玉)이다. 유년 시절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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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임승환(任勝煥)은 190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행보는 분명하지 않다. 임승환은 1919년 당시 여러 지방에서 벌어지던 3·1운동 소식을 접하고 금산읍 상옥리에 살던 김학술(金學述)[일명 김용술(金用述)]과 함께 금산 읍내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22일 밤 김학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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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정재철(鄭在轍)[1893~1960]은 1893년 11월 26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3월 말에는 대전까지 퍼져나갔다. 대전에서 벌어진 3·1운동의 모습을 목격한 정재철은 3월 31일 복수면 곡남리의 도로를 수선하러 동원된 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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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정해안(鄭海晏)[1923~2008]은 1923년 8월 5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하동해안(河東海晏)이다. 1936년 3월 금산공립보통학교[현 금산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인 정해윤(鄭海潤)이 운영하는 해산물 상점에서 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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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충청남도 금산 지역 3·1운동은 1919년 3월 23일 금산읍 장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어 3월 25일과 26일에는 제원면 일대와 진산 방축리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또 3월 28일 금산읍 장에서 재차 만세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일제 헌병 경찰은 금산읍 장터에서 만세 시위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철저한 대비를 하였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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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정해철(鄭海哲)[1907~1937]은 1907년 4월 15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해윤(鄭海潤)이다. 배우자는 김금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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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조기수(趙岐壽)[1902~1951]는 1902년 8월 3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덕삼(金德三)이다. 1925년 10월 30일 전북청년연맹이 창립될 때 참여하여 조직부 책임을 맡았다. 1926년 12월에는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한 뒤 전라북도 여산에서 조직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8년 4월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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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하홍학(河弘學)은 1919년 3월 26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방축리[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 장날에 전개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방축리 장터 만세 시위는 진산에 거주하는 청년 50여 명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들은 시위 당일 진산면 말똥재라는 곳에 모여서 만세를 부르며 방축리 장터로 행진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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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한익수(韓益洙)는 1919년 4월 금산면[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일대의 기독교 신자들이 만세 운동을 계획할 때 적극 동참한 인물이다. 1919년 3월 금산 전역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자, 4월에는 금산면에서 오석주 등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만세 시위가 계획되었다. 오석주 등은 4월 14일을 만세 운동 실행 일자로 결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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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 당시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도 여러 차례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금산읍 장터에서는 두 차례나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금산읍 장터 1차 시위는 3월 23일 임승환(任勝煥) 등의 주도로 일어났고, 2차 시위는 3월 28일에 있었다. 한철종은 3월 28일 2차 금산읍 장터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김현재(金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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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황재연(黃在淵)은 1919년 4월 금산면[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일대의 기독교 신자들이 만세 운동을 계획할 때 적극 동참한 인물이다. 1919년 3월 금산 전역으로 만세 시위의 열기가 확산하자, 4월에는 금산면에서 오석주 등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한 만세 시위가 계획되었다. 오석주 등은 4월 14일을 거사 일자로 정하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