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90
한자 金永浩|金永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 2월 17일연표보기 - 김영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김영호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만세 시위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41년 9월 27일연표보기 - 김영호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7년연표보기 - 김영호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 341 지도보기
묘소 충청남도 금산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영호(金永浩)[1881~1941]는 1881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복수면 곡남리 앞길에서 도로 공사에 동원되었다가 정재철이 대전 시장의 시위에 대해 이야기하고 만세를 선창하자, 오연구 등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헌병이 제지하였으나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이때 유영준이 참가하여 종이로 만든 국기를 흔들면서 시위에 가세하였고, 시위자 일부가 체포되었다.

김영호는 이후에도 시위를 계획하고 마을 주막을 운영하는 민영필의 집에서 정동권에게 만세 시위를 하자는 내용의 통문을 작성하여 백암리 구장의 집에 송부하였다. 또한 앞서 체포된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수의 주민을 모았다. 오후 11시쯤 200명의 주민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진산 읍내로 행진하였다. 진산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고, 김영호 등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김영호는 정부로부터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