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720
한자 鄭在轍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기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3년 11월 26일연표보기 - 정재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정재철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0일 - 정재철 태 90대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60년 11월 10일연표보기 - 정재철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6년연표보기 - 정재철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 663 지도보기
묘소 정재철 묘소 - 인천광역시 부평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정재철(鄭在轍)[1893~1960]은 1893년 11월 26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의 행적은 분명하지 않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은 3월 말에는 대전까지 퍼져나갔다. 대전에서 벌어진 3·1운동의 모습을 목격한 정재철은 3월 31일 복수면 곡남리의 도로를 수선하러 동원된 부역 현장에서 김영호(金永浩), 오연구(吳然九)수영리 주민들에게 대전의 만세 운동 상황을 전파하였다.

정재철이 금산에서도 만세 운동을 벌이자고 주민들을 설득하며 ‘독립만세’를 외치자, 김영호, 오연구를 비롯한 주민들이 호응하였다. 이때 유영준(兪英濬)은 종이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면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일본 헌병의 탄압으로 만세 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이 체포되자, 3월 31일 밤 다시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체포된 주민의 석방을 요구하고 만세를 부르며 진산면 읍내까지 행진하였다. 정재철은 이때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태(笞) 90대를 선고받았다. 1960년 11월 10일 사망하였다.

[묘소]

정재철의 무덤은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정재철은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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