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705
한자 卞熺朝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기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 11월 2일연표보기 - 변희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2일 - 변희조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만세 시위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8일 - 변희조 징역 6개월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43년 8월 14일연표보기 - 변희조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변희조 대통령표창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354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거주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도곡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변희조(卞熺朝)[1895~1943]는 1895년 11월 2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임승환(任勝煥)이 서울에서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부상을 당하여 치료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승환김학술(金學術)과 함께 금산에서 만세 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각 면에 연락하여 대표들을 지금의 금산읍 상옥리에 있는 김학술의 집에 불러 모았다. 이때 변희조도 모의에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금산읍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장과 시가지를 행진하면서 시민들과 함께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의견을 나누었다.

다음날인 3월 22일 아침, 변희조김학술이 작성한 격문 「금산경고(錦山警告)」를 구호열(具鎬烈) 등의 다른 주모자들과 함께 시장에서 배포하였다. 변희조는 정필종(鄭必鍾), 김태석(金泰碩), 김일찬(金日贊) 등 여러 사람에게 격문을 배포하면서, 조선의 독립적 자유 활동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후 2시에 우시장에 모일 것을 당부하였다. 오후 2시 우시장에 김학술임승환이 나타나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외친 것을 시작으로 금산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만세 운동 소식이 금산읍 헌병 분대에 알려졌고, 긴급 출동한 헌병 분대가 공포탄을 발사하고 곤봉을 사용하며 만세 운동을 하는 조선 민중들을 해산시켰다. 이때 변희조김학술, 임승환, 구호열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변희조는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출판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3년 8월 1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변희조는 1992년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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