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93
한자 金鍾九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4년 2월 18일연표보기 - 김종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3일 - 김종구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만세 시위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63년 11월 13일연표보기 - 김종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김종구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금산면 서기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종구(金鍾九)[1894~1963]는 1894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금산읍 3·1운동 당시 금산면 서기로 재직하였다. 1919년 3월 22일 밤, 금산읍 상옥리에 거주하던 김용술(金用述)이 자신의 집에서 임승환(任勝煥)과 함께 「금산경고(錦山警告)」라는 격문을 지었다. 「금산경고」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방금 세계 강국은 단체적·일진적(一進的) 행동으로 인하여 성립된다. 아 조선은 건국 4천여 년으로, 문명의 자격과 인의(仁義)의 인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강제 정치하에서 신고(辛苦)하는 것은, 안일 우매의 사상과 매국적자(賣國賊子)의 소치인 것이다. 동포 청년은 간교한 적자의 행동을 배우지 말고 인도(人道)를 주창하여 압박정치하에서의 금수생활(禽獸生活)을 면하고 독립적 자유 활동을 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정신을 가진 동포는 본일 오후 2시 우시장(牛市場) 상부에 집합하여 주동 인물과 행동을 함께 할 것이다.”

김종구는 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이용하여 150여 장의 「금산경고」를 등사하였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2시경 우시장에 군중이 모이자, 김종구는 선두에 서서 격문을 나누어주고 군중을 이끌며 거리를 누볐다. 시위대는 현병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지만, 오후 10시경 다시 남산에 모여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묘소]

김종구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종구는 정부로부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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