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홍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731
한자 河弘學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병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6일 - 하홍학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 만세 시위 주도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하홍학(河弘學)은 1919년 3월 26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방축리[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 장날에 전개된 만세 시위를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방축리 장터 만세 시위는 진산에 거주하는 청년 50여 명에 의해 준비되었다. 이들은 시위 당일 진산면 말똥재라는 곳에 모여서 만세를 부르며 방축리 장터로 행진한 후,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시위 규모를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만세 시위 당일 하홍학은 시위 행렬의 앞에 서서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방축리 만세 시위는 뒤늦게 출동한 일제 헌병 경찰들에 의해 중단되었다. 하홍학은 이때 헌병 경찰로부터 구타를 당하여 크게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하홍학은 구타로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헌병 경찰들이 하홍학이 죽은 줄 알고 거적으로 덮어 놓고 가버렸는데, 교촌리 한태환이라는 사람이 하홍학을 수습하여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방축리 만세 시위는 계획한 바와 같이 진행되지는 못하였지만, 하홍학 등은 시위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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