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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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康相元 |
영어공식명칭 | Kang Sangwo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한승훈 |
출생 시기/일시 | 187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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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6년 - 강상원, 최익현 의병부대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강상원 자신회 가담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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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활동 사항]
강상원(康相元)은 1872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에서 태어났다. 1906년 최익현의 의병부대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07년 박대하의 권유를 받고 자신회(自新會)에 가담하였다. 자신회는 나철(羅喆)[1863~1916], 오기호(吳基鎬)[1863~1916] 등이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단하기 위해 1907년 2월 조직한 비밀 결사 단체이다.
1907년 3월 25일 오전 10시 무렵, 이홍래의 지휘를 받은 강상원은 권총, 동맹서(同盟書), 참간장(斬奸狀)을 휴대하고 서울 사동의 길목에서 을사오적의 한 명인 권중현(權重顯)[1854~1934]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권중현이 입궐하기 위해 사동 길목에 이르자 이홍래가 권중현을 꾸짖으며 권총을 꺼냈고, 강상원도 권중현과 일본군 호위병을 향해 발사하였다. 강상원은 자신이 쏜 탄환이 권중현과 일본군을 명중시키지 못하자 민가로 도망갔으나 결국 체포되었다. 평리원(平理院)에서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선고받고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다. 1907년 12월 18일 사면을 받아 풀려났다.
[상훈과 추모]
강상원은 2015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