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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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在榮 |
이칭/별칭 | 남애(南崖)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기성 |
출생 시기/일시 | 1919년 8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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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4년 6월 - 류재영 일본군 탈출, 광복군 가담 |
추모 시기/일시 | 1982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90년![]() |
몰년 시기/일시 | 1997년 12월 30일![]()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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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가계]
류재영(柳在榮)[1919~1997]은 1919년 8월 6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에서 태어났다. 호는 남애(南崖)이다.
[활동 사항]
류재영의 유년기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에서도 많은 젊은이들을 군인으로 만들어 전장에 보냈다. 이때 류재영도 일본군에 징집되어 1944년 6월 장쑤성[江蘇省] 쑤저우[蘇州]에 주둔하고 있었다.
한편, 당시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는 저장성[浙江省] 진화[金華]에 주재하고 있었다. 제2구대는 조선의용대 시절부터 현지 중국군 당국과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며, 학도병 출신 조선 청년들에 대한 초모와 선전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류재영은 이를 탐지하고 성동준(成東準)·김영남(金映男)·박영(朴英)·최덕룡(崔德龍)·정병훈(丁炳薰)·김봉옥(金鳳玉) 등과 함께 1945년 2월 일요일 외출 시간을 이용하여 기관총 1정, 소총 7정, 대검, 실탄 300발, 방독면 9개 등의 무기와 기밀문서를 가지고 최전선 시찰을 가장하여 탈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중국 충의구국군(忠義救國軍)을 거쳐서 광복군 제2지대 제3구대에서 활약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광복군이 국내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항저우[杭州] 잠편지대(暫編支隊) 참모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97년 12월 30일 경기도 안양시에서 사망하였다.
[묘소]
류재영은 1998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안치되었다.
[상훈과 추모]
류재영은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