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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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範植 |
이칭/별칭 | 성방(聖訪),일완(一阮)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윤희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관료이자 애국지사.
[가계]
홍범식(洪範植)[1871~1910]의 본관은 풍산(豊山)이며, 충청북도 괴산 출생이다. 자는 성방(聖訪)이고, 호는 일완(一阮)이다. 풍산 홍씨는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 집안으로, 조선 후기 대표적인 명문 노론 가문이다. 할아버지 홍우길(洪祐吉)은 한성부판윤, 이조판서를 지냈고, 아버지 홍승목(洪承穆)은 병조참판, 궁내부특진관을 지냈다.
[활동 사항]
홍범식은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902년 내부주사를 시작으로 관직에 올랐다. 이후 혜민서참서를 지냈고, 1907년 전라북도 태인군수로 부임하였다.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확산하였을 때 의병을 진압하려고 온 일본군 수비대를 설득하여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였다. 1909년 금산군수로 부임하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의 강제 병합 소식이 전해졌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에 객사 뒤뜰 소나무 가지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홍범식은 할머니, 아버지, 부인 및 6명의 자녀에게 10여 통의 유서를 남겼다. 그중 맏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망국의 수치와 설움을 이기지 못하여 순국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자식들은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군수로 재임하며 황무지 개척, 관개 수리 사업을 진행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마을마다 세워진 송덕비가 38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홍범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금산향교에서는 매년 8월 29일 홍범식군수순절비에서 홍범식군수추모제향을 봉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