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704
한자 方致京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기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0년연표보기 - 방치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 8월 - 방치경, 조석우 의병부대 가담
추모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방치경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활동 사항]

방치경(方致京)은 1860년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1907년 고종이 헤이그밀사 사건을 구실로 강제 퇴위당한 것을 계기로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막대한 재정이 낭비된다는 이유로 군대까지 해산당하자, 반발한 군인들도 의병 전쟁에 참여하였다. 충청북도에서는 조석우(趙錫祐)가 일본의 침략에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1909년 8월 23일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에 있는 영국사(寧國寺)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장군선(張君先), 조덕장(趙德章), 권덕원(權德元) 등이 조석우와 뜻을 함께하였다. 조석우는 신화병(神化兵)을 이끄는 총대장을 자칭하면서 삼남대장(三南大將)이 되었고, 장군선, 조덕장, 권덕원은 각각 부장(副將)의 직책을 맡았다.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 거주하던 방치경도 조석우가 의병을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병졸로 참여하였다. 조석우 의병부대는 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인을 모두 처단하고 철도 정거장 등을 파괴하기로 선언하고, 각 지역에 격문을 띄워 병사를 모집하였다. 방치경은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발각되어 의병장 조석우 및 다른 의병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유형(流刑) 2년을 선고받았다.

[상훈과 추모]

방치경은 2009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