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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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海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기성 |
출생 시기/일시 | 1865년 7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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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임해준, 장운식 의병부대 가담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6월 - 임해준 징역 7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35년 4월 23일![]() |
추모 시기/일시 | 2010년![]()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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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
묘소 | 임해준 묘소 - 충청북도 옥천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활동 사항]
임해준(任海俊)[1865~1935]은 1865년 7월 30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본이 헤이그밀사 사건을 계기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자, 전국 각지에서 정미의병(丁未義兵)이 봉기하였다. 이때 임해준은 의병장 장운식(張雲植)의 휘하로 들어가 충청북도 옥천과 충청남도 금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임해준은 주로 민한식(閔漢植), 이향운(李香雲), 신돌석(申乭石), 곽준희(郭俊熙), 김평근(金平根) 등의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1909년 3월 영동경찰서의 순사들에게 체포되었고, 6월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1935년 4월 23일 사망하였다.
[묘소]
임해준의 무덤은 충청북도 옥천군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해준은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