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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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嚴昌樹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기성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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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6년 - 엄창수 금산공립보통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 엄창수 진악동지회 조직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2월 17일 - 엄창수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5월 13일 - 엄창수 징역 1년 선고 |
추모 시기/일시 | 1980년![]() |
몰년 시기/일시 | 1989년 6월 8일![]()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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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459 |
학교|수학지 | 금산공립보통학교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금산로 1427[상옥리 137-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엄창수(嚴昌樹)[1923~1989]는 1923년 2월 26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에서 태어났다. 1936년 금산공립보통학교[현 금산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전주농업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이후 아버지에게 금은 세공업을 익히고 1941년부터 읍내 시계점에서 시계 수선을 배웠다.
엄창수는 1940년 문대식(文大植), 박승묵(朴勝默), 최병무(崔秉茂), 정해안(鄭海晏) 등 7명과 금산시장친우계(錦山市場親友稧)를 조직하였고, 이후 진악동지회(進樂同志會)로 개칭하였다. 이들은 1940년 만주에서 조선 독립을 위해 활동하는 조선인 대장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장 투쟁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병기 사용과 병력 지휘를 익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조선육군특별지원병에 지원하거나 만주국으로 가서 군인이 되기로 하였다.
그러나 최병무가 지인 가운데 공산주의자로 징역형을 받은 자가 있다는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하자, 엄창수는 동료들과 함께 입대를 거부하고 조선 독립을 위해 활동할 것을 결의하였다. 엄창수는 문대식, 박승묵, 정해안과 함께 금산군 진악산에서 등산객들에게 조선 독립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동굴에 태극기를 그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새긴 목판을 설치하였다. 이 때문에 1941년 2월 17일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89년 6월 8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엄창수는 1980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