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95
한자 金鎭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윤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8년연표보기 - 김진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김진철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의병 활동하며 군자금 모금
몰년 시기/일시 1909년연표보기 - 김진철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김진철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충청남도 금산군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의병.

[활동 사항]

김진철(金鎭哲)[1848~1909]은 1848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태어났다. 어상(魚商)을 하다가 60세인 1908년 3월에 서주일(徐周一) 의병장 의진에 참여하였다. 서주일[본명 서종락]은 1905년 을사조약 이후 거병하여 산남의진(山南義陣)을 조직한 인물이다.

김진철은 총 5회에 걸쳐 서주일 부대 부대원들과 함께 총으로 무장하고 경상북도 청송군 일대 동장과 유력자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탈취하였다. 1908년 3월 부대원 100명과 함께 청송군 부동면 부일동에 들어가 동장과 유력자들에게 엽전을 지출하게 하였다. 4월에는 부대원 20명과 함께 청송군 부남면 중기동에 사는 심평오(沈平吾), 화상동에 사는 동장 조상은(趙相銀), 임춘식(林春植)으로부터 엽전을 탈취하였다. 8월에는 부대원 100명과 함께 다시 중기동에 들어가 동장을 호출하여 엽전 등을 지출하게 하였다.

1908년 12월 5일에는 서주일 부대에서 이탈하여 일본 수비대에 부대를 고발한 이기수(李基壽)를 살해하고자 부남면 조천동에 있는 이기수의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기수가 도망가는 바람에 살해에 실패하였고, 오히려 동네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수비대에 넘겨졌다. 김진철은 1909년 1월 대구지방법원에서 강도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3월 대구공소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4월 대심원에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상훈과 추모]

김진철은 1991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참고문헌]
  • 공훈전자사료관(https://e-gonghun.mpva.go.kr)
  •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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