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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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二面 |
영어공식명칭 | Nami-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세진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법정면.
[명칭 유래]
남이면(南二面)은 금산군의 남서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남쪽에 이웃한 남일면(南一面)과 구분하기 위하여 ‘남이면’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남이면은 봉황천의 상류에 자리한 지역으로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는 추정하지만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단정할 수는 없다. 후백제의 전략적 거점 마을인 경양현(景陽縣)이 대양리(大陽里)에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 금산군의 남이면에 속하였다. 1789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남상면(南上面)과 남하면(南下面)으로 나오는데, 남상면에는 성곡리, 심천리, 매곡리, 고답리가 나타나고, 남하면에는 구석리(九石里), 금천리, 역평리(驛坪里), 건천리(乾川里)가 보인다. 남이면 지역은 1860년대 발간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동남면, 남서면으로 나와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 때 진산군[현 진산면, 추부면, 복수면 일대]과 함께 공주부 금산군 관할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편제되었다. 남이면 지역은 1910년대 초에는 다시 남상면과 남하면으로 나온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병합할 때 남상면과 남하면을 합하여 남이면을 개설하였다. 1963년 1월 1일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금산군이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이 되었다.
남이면의 자연 마을 이름이 처음으로 기록된 『호구총수』에는 8개 마을의 이름이 보이고, 『1872년 지방지도』「금산군지도」에는 15개 마을 이름이 올라와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병합 때는 24개 마을 이름이 보이고 1967년 『금산군지』에는 58개 마을 이름이 올라오는 등 그 수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자연환경]
남이면의 북쪽은 금산군 진산면의 오항리, 엄정리와 금산읍의 음지리, 양지리, 계진리, 동쪽은 금산군 남일면의 황풍리, 초현리, 신천리, 남쪽은 남일면 신동리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주천면, 서쪽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과 접한다. 남이면은 금산의 금남정맥이 시작되는 함박산부터 궁산까지의 산줄기와 궁산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진악산 산줄기, 함박산에서 동북쪽으로 뻗어 내려 남일면과 경계를 지르며 흘러내린 성치산 산줄기가 매곡리 봉황천에서 진악산 산줄기와 만나는 사이의 지역과, 함박산에서 완주군 운주면과 경계를 나누며 북쪽으로 흘러 건천리를 이루고 궁산까지 가는 다른 산줄기 사이까지를 포함한다. 남이면의 하천은 크게 세 개가 있는데, 먼저 함박산에서 시작하는 대양천과 궁산에서 시작하는 쇠내의 물줄기가 하금리에서 합쳐져서 남일면으로 흐르는 봉황천이 있다. 또 건천천이 있는데, 함박산 서북쪽으로 뻗은 선야봉 산줄기에서 시작하여 건천리를 지나가는 건천천의 물줄기는 완주군 운주면으로 흘러 옥계천, 운주천이 되어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으로 흘러간다.
[현황]
남이면은 10개 법정리[대양리, 건천리, 역평리, 상금리, 하금리, 흑암리, 구석리, 매곡리, 석동리, 성곡리], 20개 행정리, 73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97.3㎢로, 금산군 전체 면적[577.14㎢]의 16.85%에 해당한다. 2023년 10월 31일 기준 1,147가구, 2,016명[남자 1,037명, 여자 97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남이면 소재지는 하금리이며, 전체 면적의 80%가 산지여서 인삼, 깻잎, 콩 등을 재배한다. 문화 유적으로는 백제 시대 성으로 알려진 금산 백령성(錦山 栢嶺城)과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한 보석사(寶石寺) 등이 있다. 건천리에 있는 남이자연휴양림은 오토 캠핑장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