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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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洞里 |
영어공식명칭 | Seokd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세진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법정리.
[개설]
남이면 동쪽인 진악산과 마이산 사이에 자리한 석동리(石洞里)는 심천에서부터 흘러온 계곡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산간 농촌 마을이다.
[명칭 유래]
석동리 보석사(寶石寺) 앞에 보석이 들어 있다고 전하는 보석바위가 있어 보석골, 석동리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는 금산군의 남이면 지역이었다. 남이면은 1789년(정조 13) 간행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남상면(南上面)과 남하면(南下面)으로 나오고, 1860년대 발간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동남면, 남서면으로 나와 있다. 『1872년 지방지도』「금산군지도」에 ‘석동’이란 지명이 보인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 관할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편제되었다. 석동리 지역은 1910년대 초반 ‘내동’이란 이름으로도 나타난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병합할 때 남상면과 남하면을 통합하여 남이면을 개설하고, 남상면 심천리 일부 지역을 합하여 남이면의 법정리인 석동리로 하였다. 1963년 1월 1일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금산군이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석동리의 북쪽은 남이면의 하금리와 성곡리, 동쪽은 금산군의 남일면 초현리, 남이면 매곡리, 남쪽과 서쪽은 남이면의 매곡리와 구석리, 흑암리, 하금리와 접한다. 진악산 정상인 물굴봉에서 남서로 흘러가는 산줄기가 하금리, 흑암리의 마이산과 경계를 이루고, 새티재를 지나 매곡리 사재봉을 지나는 산줄기와 진악산 물굴봉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진악산 줄기의 사이에 석동리가 자리한다. 석동리 경계의 둥근 형태 산줄기들의 물줄기가 심천에서 보석천의 물줄기와 합류하여 석동천이 되어 봉황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현황]
2023년 10월 31일 기준 석동리의 면적은 8.05㎢이며, 117가구, 291명[남자 150명, 여자 14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석동1리[석골], 석동2리[지프내, 안골]이며, 자연 마을로 석동, 샛번지, 정태골 등이 있다. 석동리 진악산에 신라 때인 885년(헌강왕 11) 조구대사(祖丘大師)가 창건한 보석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