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240
한자 大陽里
영어공식명칭 Daeya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백세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 - 전라북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3년 1월 1일 - 전라북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에서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3.9㎢
가구수 106가구
인구[남/여] 158명[남 82명/여 76명]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법정리.

[개설]

대양리남이면(南二面) 남서쪽에 자리한 지역으로, 대양리의 산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모여드는 대양천 주변에서 농사를 짓는 산간 농촌 마을이다.

[명칭 유래]

후백제 시대 동쪽을 방어하려는 전략에 따라 경양현(景陽縣)을 설치했던 마을로, 햇빛이 많은 양지 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대양(大陽)이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는 금산군의 남이면 지역이었다. 남이면 지역은 1789년(정조 13) 간행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남상면(南上面)과 남하면(南下面)으로 나오고, 1860년대 발간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동남면, 남서면으로 나와 있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 관할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편제되었다. 1910년대 초반에는 대양, 명고, 두문 등의 이름으로 나타난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병합할 때 남상면과 남하면을 통합하여 남이면을 개설하고, 백암과 원대양, 요골, 도촌, 신대, 도룡골, 명고동, 삼방, 유곡, 두문동, 입석 등 여러 자연 마을을 합하여 남이면의 법정리인 대양리로 하였다. 1963년 1월 1일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금산군이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대양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대양리의 북쪽과 동쪽은 남이면역평리흑암리, 남쪽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주천면의 무릉리와 용덕리, 서쪽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남이면 건천리와 접한다. 대양리는 진안의 운장산에서 뻗은 금남정맥이 금산으로 들어오는 함백산 동쪽 골짜기에 자리하며, 마을 중심을 흐르는 대양천은 금산군의 6대 하천 중 하나인 봉황천의 상류 지역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때문에 금산군에 심한 가뭄이 들어도 대양리에서는 웬만해선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현황]

2023년 10월 31일 기준 대양리의 면적은 13.9㎢이며, 106가구, 158명[남자 82명, 여자 7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대양1리[양지촌, 새터, 욧골, 백암, 입석, 선담], 대양2리[명고동, 도룡골, 개안골, 삼방, 유곡, 두문동]이다. 대양리 입구의 욧골에 후백제 견훤(甄萱)이 동쪽을 방어할 목적으로 만든 마을인 경양현 터가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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