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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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九石里 |
영어공식명칭 | Guseok-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세진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법정리.
[개설]
구석리(九石里)는 남이면의 최남단에 자리한 지역으로, 봉황천 주변 들에서 주로 농사를 짓는 산간 농촌 마을이다.
[명칭 유래]
구석리 마을 앞 냇가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어 거북바위 또는 구석(九石)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병합 때 모티[毛峙], 고답을 합하여 구석리라 이름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후기에는 대부분 지역이 금산군의 남이면에 속하였다. 남이면은 1789년(정조 13) 간행한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남상면(南上面)과 남하면(南下面)으로 나오며 구석(龜石)과 고답(高沓) 등의 지명이 보인다. 1860년대 발간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남이면이 동남면, 남서면으로 나와 있다. 『1872년 지방지도』「금산군지도」에 구석, 모티, 고답 등의 지명이 나온다.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편 때 공주부 금산군 관할이 되었고, 1896년 전라북도 금산군에 편제되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 구역을 병합할 때 남상면과 남하면을 통합하여 남이면을 개설하고, 남상면의 모티리와 고답리를 합하여 남이면의 법정리인 구석리로 하였다. 1963년 1월 1일 지방 행정 체제 개편에 따라 금산군이 충청남도에 편입되어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구석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구석리의 북쪽은 남이면의 흑암리와 석동리, 매곡리, 동쪽은 금산군 남일면의 신천리, 신동리, 남쪽은 남일면 신동리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용담면 와룡리, 서쪽은 진안군 주천면의 신양리, 용덕리와 접한다. 구석리는 진악산 물굴봉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마이산 남쪽 산줄기와 금산의 최남단 성치산 줄기가 동북쪽으로 흘러 봉황천과 합류하는 사이의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무자치골이 있고, 성치산 줄기에 봉화산 십이폭포가 있다.
[현황]
2023년 10월 31일 기준 구석리의 면적은 12.64㎢이며, 85가구, 142명[남자 66명, 여자 7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행정리는 구석1리[모티, 원구석], 구석2리[고답, 광대정]이며, 자연 마을로 구석, 높은논이, 광대정, 모티[뫼자울] 등이 있다. 성치산 정상에 백제 시대에 쌓은 것으로 비정하는 성치산성 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