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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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風祠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무금로 1688[불이리 264]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규완 |
건립 시기/일시 | 180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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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철|철거 시기/일시 | 1868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8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6년 - 청풍사 보수[1976]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9년 - 청풍사 보수[1979]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청풍사 보호 구역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풍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청풍사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무금로 1688[불이리 264]![]() |
성격 | 사당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3칸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당.
[개설]
청풍사(淸風祠)는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길재(吉再)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길재는 고려 말~조선 초의 학자로 이색(李穡),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등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학에 힘썼다. 이색, 정몽주와 함께 ‘고려의 삼은’으로 불렸다. 청풍사는 길재의 본관이자 금산 지역의 재지사족(在地士族)이었던 해평 길씨(海平 吉氏)의 문중 사당으로, 진영(眞影)과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제향을 모시고 있다.
[위치]
청풍사는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264번지에 있다.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 버스 정류장에서 서쪽으로 52m 가면 나오는 청풍서원(淸風書院)에 있다.
[변천]
1671년(현종 12) 길재가 초년에 시묘살이를 하였던 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길재의 후손 길상복(吉尙復)과 길협구(吉協龜)가 선비들과 함께 불이사(不二祠)를 창건하였고, 1678년(숙종 4)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이후 1741년(영조 17)에 서원 남설(濫設) 금령에 저촉되어 훼철되었다. 시간이 흘러 1761년(영조 37), 금산군수 민백흥(閔百興)이 주선하여 해주 청성묘(淸聖廟)에 붙인 주자(朱子)의 글씨 ‘백세청풍(百世淸風)’ 네 자를 본떠 새긴 비를 유허에 세웠다. 또 그 옆에 따로 소비(小碑)를 세워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와 송명흠(宋明欽)이 비문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다만 훼철된 사우(祠宇) 옛터에 길재의 충절을 기릴 곳이 없어, 1800년(순조 즉위년)에 사당을 세우기로 계획하였다. 이에 금산군수 홍희정(洪羲正)이 공사를 지원하여 1804년(순조 4)에 청풍사를 건립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청풍사는 다시 철폐되었다. 이후 1928년에 청풍비각을 창건하면서 청풍사와 청풍서원을 중수하였고, 1976년과 1979년에 보수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며, 경내에는 사우와 신문(神門), 강당, 비각(碑閣) 등이 있다. 사우에는 길재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1977년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친필로 ‘청풍서원’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었다. 백세청풍비(百世淸風碑)와 고려문하주서야은길선생유허비(高麗門下注書冶隱吉先生遺墟碑),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가 세워 있으며, 현판으로는 ‘불이당기’와 ‘불이영당기’, ‘청풍사기’, ‘청풍사 중수기’가 있다.
[현황]
청풍사는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제16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되었으며, 1990년에는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매년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현재 금산군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우이다
[의의와 평가]
청풍사는 고려 말~조선 초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이은, 충절로 대표되는 길재를 모신 사당으로, 길재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