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길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68
한자 海平 吉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353년 - 길재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419년 - 길재 사망
본관 해평 길씨 본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입향지 해평 길씨 입향지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해평 길씨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지도보기|부리면 불이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길당(吉唐)
입향 시조 길재(吉再)

[정의]

길당을 시조로 하고, 길시우를 중시조로 하며, 길재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해평 길씨(海平 吉氏) 금산군 입향조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이다. 길재는 아버지 길원진(吉元進)금주(錦州)를 다스릴 때 따라왔다가, 중량장을 역임한 신면(申勉)의 데릴사위가 되어 신면의 전장이 있는 금산[현 금산군 부리면]에 정주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게 되었다.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부리면 불이리 등에 해평 길씨 집성촌이 있다.

[연원]

해평 길씨의 시조인 길당(吉唐)은 송나라에서 동래(東來)하여 고려 문종조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참지정당문학(參知政堂文學)에 오르고, 해평백(海平伯)에 봉해져서 해평(海平)으로 관적(貫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계가 불명확하여 고려 후기에 성균관생원(成均館生員)을 지낸 길시우(吉時遇)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길시우의 증손인 길재가 1386년(우왕 12)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 문하주서(門下注書) 등을 지냈고, 조선 사림 학맥의 근원이 된다. 현재 해평 길씨는 불이파와 예미파, 수촌파, 정문파, 삼성파, 독산파, 대목동파, 굴리마파, 서당곡파, 돈의파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입향 경위]

『야은선생속집(冶隱先生續集)』의 부록에 실려 있는 유최기(兪最基)가 지은 「불이당기(不二堂記)」에 따르면, 길시우의 증손자인 길재가 아버지 길원진금주를 다스릴 때 이곳으로 왔다가 중량장을 역임한 신면의 데릴사위가 되어 신면의 전장이 있는 금산에 정주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하게 되었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해평 길씨는 전국에 3만 5823명이고, 금산군에는 1,349명이 살고 있다. 금산군의 남이면 성곡리, 부리면 불이리 등에 해평 길씨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성곡서원(星谷書院) 터가 있다. 1613년(광해군 5) 금산 지역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서원으로 길재 등을 배향하였으나 1871년(고종 8) 흥선 대원군(興宣 大院君)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현재는 밭으로 변하였다.

길재의 진영(眞影)과 위패를 봉안한 청풍사(淸風祠)[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는 불이영당(不二影堂)으로도 불린다.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있는데, 금산읍에서 무주로 가는 국도 제37호선을 타고 동남쪽으로 약 7㎞되는 지점의 왼편에 있다. 야은선생유허비(冶隱先生遺墟碑)와 해주 수양산(首陽山)의 청성묘(淸成廟)에 있는 주자의 글씨인 ‘백세청풍(百世淸風)’ 네 자를 새긴 비가 비각 안에 서 있으며, 중국 이제묘(夷齊廟)에 쓰여 있는 ‘지주중류(砥柱中流)’라는 네 글자를 새기고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음기를 쓴 비가 사우 입구 왼편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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