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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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刹 |
영어공식명칭 | Temple |
이칭/별칭 | 사원(寺院),가람(伽藍),절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지송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부처를 숭상하고 불법을 익히는 장소.
[개설]
사찰은 사원(寺院)·가람(伽藍)이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 세워진 초문사(肖門寺)와 이불란사(伊不蘭寺)이다. 사찰은 부처를 봉안한 금당(金堂)과 탑이 중심이 되는데, 금당은 어떤 부처를 모셨는가에 따라 대웅전, 아미타전, 대적광전 등의 이름이 붙는다. 금당 외에도 관음전, 약사전, 지장전, 명부전 등의 전각과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 종각, 고루, 선당(禪堂), 승려들의 숙소인 요사채 등이 사찰의 구성 요소가 된다.
[금산 지역의 사찰]
백제 시대 금산 지역의 사찰로는 월봉사, 보통사, 탑선사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신라 46대 문성왕 대에 무염국사가 당나라에 가서 당의 고승(高僧) 마곡보철에게 불법을 전수한 후 돌아와 전국 각지에 선종을 포교하고 사찰을 지었는데, 금산 지역에는 신음산의 신안사, 천비산의 미륵사, 서대산의 서대사, 만인산의 봉접사 등이 무염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또한 신라 신문왕 때에는 원효대사가 대둔산에 와서 수도하면서 대둔사와 태고사, 안심사, 석천사 등을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옛부터 산수가 수려하고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충청남도 금산에는 대둔산 자락을 따라 명찰이 많이 건립되었다. 그러나 현재 금산군에서 볼 수 있는 사찰은 그 수가 많지 않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억불 정책에 따라 금산 지역에도 폐사가 많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1530년(중종 25)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사찰 현황을 보면 조선 시대에 불교가 전락한 정황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초기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금산에 10개, 진산에 4개의 사찰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석천사, 만덕사는 폐사되어 사지만 남아있고 월봉사 역시 폐사된 상태로 유물만이 발굴되었다. 봉서사와 대둔사도 폐사된 상태이다. 현재 남아있는 전통 사찰은 신안사(身安寺), 보석사(寶石寺), 태고사(太古寺), 미륵사(彌勒寺) 등 4개 뿐이다. 4개의 전통 사찰은 모두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태고사는 고려 시대에 중창되고 조선 시대에 다시 한번 재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탑이 있는 곳은 사찰이 폐사된 후 석탑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의 사찰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밖에 금산군에서 찾을 수 있는 사찰과 사지 중 신라 헌강왕 때에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것만 4건이라는 점도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