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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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太古寺 |
영어공식명칭 | Taegosa Temple |
이칭/별칭 | 대둔암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청림동로 440[행정리 512-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이지송 |
성격 | 사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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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자 | 원효대사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행정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개설]
태고사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대둔산 낙조대(大屯山 落照臺) 아래에 있는 사찰이다. 전북특별자치도와 경계를 이룬 곳에 위치하며 경승지(景勝地)의 일환으로 관광객의 왕래가 빈번하다.
신라 제31대 신문왕(紳文王) 때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살구쟁이 남쪽 대둔산 중턱에 있는 원효암에서 도를 닦은 다음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만해 한용운은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명승지를 말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비록 대둔산 전체에서 금산 지역이 차지하는 지역의 비중은 적지만 태고사의 높은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다.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만큼 태고사는 원효대사와 관계있는 전설이 많은 편이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 신문왕 때 명산을 순례하던 원효는 이곳을 한듬산[대둔산의 다른 이름]에 발길이 닿았다.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산을 본 것은 별로 없었다. 소금강이라고 생각한 원효는 살구쟁이 남쪽에 있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불경을 외우며 도를 닦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이라 보통사람은 대낮에도 함부로 다닐 수 없었고 밤이면 온갖 산짐승들이 우짖는 소리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으나 몇 해 동안이나 원효는 이 곳에서 도를 닦았다. 그는 이곳에서 정진 끝에 도를 텄고 앞날을 미리 예측하는 천리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유명한 대사가 된 후 지금의 태고사를 창건하고 이곳에서 머무르던 어느 날, 원효대사는 당나라에 있는 만보산의 산사태를 미리 알게 되었다. 그는 낙조대에 올라 ‘척판구중 동방 원효(擲板求衆 東方元曉)’라고 적은 작은 판자를 서쪽으로 던졌는데, 이것이 나비처럼 날아가 만보산의 당나라 스님들을 구하였다. 이들은 사람들을 보내어 태고사에 있는 원효대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다고 한다. “태고사에서 만보산 절 구경하듯 한다”는 속담은 바로 이 전설에서 유래한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신라 제31대 신문왕(紳文王) 때에 원효대사가 살구쟁이 남쪽 대둔산 중턱에 있는 원효암에서 도를 닦은 다음 창건하였다고 한다. 절터를 본 원효대사(元曉大師)가 너무 기뻐 “세세생생 도인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하고 3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할만큼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본래 이름은 ‘대둔암’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고려 시대에 태고화상(太古和尙)이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진묵대사(震黙大師)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태고사는 비교적 웅장한 모습이었으나 6·25전쟁 때 불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그 후 다시 세운 건물들이다. 대웅전, 무량수전, 산신각, 관음전 등 건물이 있으며 불상 2구가 있다.
현재 관음전, 무량수전, 대웅전, 산신각, 요사채와 조선 시대 부도 3기가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을 비롯한 다수의 시설이 최근에 축조되어 정리되었다.
[관련 문화재]
태고사 대웅전은 72칸의 웅장함을 자랑하던 건물이었으나 6·25전쟁 때 불에 타버렸다. 이후 3칸 규모로 집을 지어 불상을 모셔오다가 1976년에 무량수전, 관음전과 함께 정면 7칸, 우측 2.5칸 좌측 3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로 대웅전을 복원하였다. 복원된 현재의 대웅전은 목조 건물에 기와 지붕으로 되어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제 27호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에 모시고 그 좌우에 문수(文殊), 보현보살(普賢菩薩)을 모셨는데, 불상은 인도의 향근목으로 발원기도를 하면 영험이 크다 해서 여러 곳에서 신도가 모였었다.
태고사는 창건 이후 수많은 고승과 거유를 배출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진묵대사와 우암(尤庵) 송시열(未時烈)의 구도는 가장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둔산 중턱에서 태고사로 올라가는 계단 중에 바위에 자연적으로 생긴 짧은 굴을 통과하게 되는데, ‘석문(石門)’ 이라는 암각문이 새겨져 있다. 글씨는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