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방아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71
한자 -契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서 연자방아를 운영하기 위하여 조직한 계.

[개설]

연자방아는 연자매를 쓰는 방아이다. 둥글고 넓적한 돌 위에 톱니 역할을 하는 작고 둥근 돌을 옆으로 세워 이를 말이나 소가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도구이다. 일제 말기 발동기를 이용한 정미소가 등장하기 이전에 곡식을 찧는 일은 주로 연자방아와 디딜방아로 해결하였다. 연자방아는 비용이 많이 드는 까닭에 마을에서 계를 조직하여 공동으로 운용하기도 하였다.

[내용]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는 일제 강점기 2개의 연자방아계가 조직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친분이 있는 주민들이 계를 모아 연자매를 마련하고 함께 운영하였다. 하나는 김씨·육씨 집안에서 여섯 명이 출자한 방아이고, 다른 하나는 타성 주민 7~8명이 계를 조직하여 마을 입구에 방앗간을 세웠다. 과거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에서 보리는 대부분 연자매로 찧었다. 그런데 마을의 인구에 비해 방아가 부족하여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계원은 무료로 방아를 이용하고, 그 외의 주민들은 보리 한 가마를 찧는데 한 바가지를 삯으로 냈다.

[특징 및 의의]

연자방아는 현대식 정미소의 등장으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와 함께 방아를 운영하던 연자방아계도 해체되었다.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는 반상(班常)의 구분이 엄격하여 광복 직후까지도 용강서원(龍江書院)에 출입했던 양반의 후예는 상여를 매지 않았다. 김씨·육씨 집안이 대대로 양반 행세를 했고, 이른바 ‘중촌 사람’으로 불리었던 나머지 성씨는 상민 취급을 받았다. 2개의 연자방아계는 이러한 저간의 사정이 반영된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