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생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66
한자 門生契
이칭/별칭 문인계,입설계,사문계,동문계,사은계,가숙계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문생들이 스승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조직한 계.

[개설]

문생계(門生契)는 문하(門下)에서 강회(講會)를 열면서 스승을 봉양하거나 추모할 목적으로 조직된 계이다. 흔히 문인계·입설계·사문계·동문계·사은계·가숙계(家塾契) 등으로 불린다. 문생계의 성립은 조선 전기 주자학의 학문적 성숙과 그에 따른 이황(李滉)·이이(李珥) 등과 같은 대학자의 출현 및 그 제자들에 의한 학파의 형성과 맞닿아 있다. 1610년(광해군 12)에 율곡의 문인들이 결성한 ‘동문계’는 문생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내용]

금산 지역에서는 다양한 문생계가 조직되어 있다. 가령 1723년(경종 3) 조직된 금은(錦隱) 육지형(陸之逈)[1663~?]의 문생계가 비교적 앞선 시기의 사례이다. 옥천 육씨 금산 입향조인 육지형은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가마골에서 서당을 열고 문생을 가르쳤다. 「문생명록(門生名錄)」에는 동문수학한 12인이 각각 30문전(門錢)을 갹출하여 계를 조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금산의 문생계는 지난날 유교 문화의 전통이 완고했던 집성촌에 주로 분포한다. 특히 유림의 고장을 자처하는 금산군 남일면은 월주(月州) 곽동석(郭東錫)[1885~1958] 문생계 등 19개의 문생계가 최근까지 명맥을 잇고 있다. 이 가운데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에는 무려 10개의 문생계가 있다. 그 현황은 1914년 죽포(竹圃) 신영석[1875~1912]의 입설계(立雪稧)를 비롯, 1919년 경암(敬庵) 곽병훈의 초산입설계(草山立雪稧), 김덕수 문하의 난포계(蘭圃稧), 유덕자 곽병무의 선덕을 기리는 숭덕계(崇德稧), 국당(菊堂) 김용을 스승으로 하는 사문계(師門稧), 현산(峴山) 김병용의 현산계(峴山稧), 남당(南堂)·남은(南隱)의 삼호계(三乎稧), 초은(草隱) 곽태용의 초은계(草隱稧) 등이 있다. 이들 문생계는 1914년 신영석과 1919년 곽병훈의 입설계를 시작으로 1950~1970년대 집중적으로 결성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금산 지역은 조선 전기 전통 마을의 면모가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춘 지역으로 평가된다. 그에 걸맞게 비석제가 전승되는 금산군 남일면부리면 일대는 숱한 인물의 자취가 서려 있다. 고려 말엽 성리학의 수용에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윤택(尹澤)[1289~1370]·윤귀생(尹龜生)[1317~1381] 부자가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에 은거하여 많은 후진을 양성했고,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추앙을 받는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가 한때 세거한 곳도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였다. 그런가 하면 조선 시대에는 미촌 윤선거(尹宣擧)[1610~1669], 시남 유계(兪棨)[1607~1664], 초려 이유태(李惟泰)[1607~1684], 명재 윤증(尹拯)[1629~1714] 등 당대의 석학들이 산천재서원(山泉齋書院)에서 학문을 연마하며 고을의 인재들을 길러내어 문생계가 만들어지는 단초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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