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석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13
한자 碑石祭
이칭/별칭 비제,빗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추모제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에서 학덕이 높은 향선생을 기려 문생들이 비석에 지내는 추모제.

[개설]

비석제(碑石祭)는 사우의 향사나 뫼에서 행하는 묘제(墓祭)와 달리 비석을 대상으로 한다. 일명 ‘비제(碑祭)’, ‘빗제’라고도 한다. 지난날 사숙이나 서당에서 문생(門生)을 가르친 향선생(鄕先生) 혹은 마을에서 선덕을 베푼 유공자를 기리는 제사이다. 본래 향선생이란 조선 시대 학문과 덕행이 고을의 사표가 되는 선비로서 군현 단위의 향회가 조직되어 있는 곳에서 그 대표를 지칭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향장(鄕長)’, ‘향헌(鄕獻)’ 등 다양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비석제의 대상인 향선생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또는 광복 직후에 활동한 인물이란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장을 대표할 만한 유학자가 주류를 이룬다.

[연원 및 변천]

금산에서 비석제의 제향 인물은 초야에 묻혀 인재 양성에 일생을 헌신한 향선생이나 유공자가 그 대상이 된다. 서원이나 사우에 배향될 만한 조건을 갖추지는 못했을지언정 학덕과 행의가 지역민에게 귀감이 되는 유학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 비석제로 숭앙을 받는 인물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향리에 은거하여 문생을 길러낸 향선생이 25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기타 선덕을 베푼 인물이 2명으로 나타난다.

비석제는 서당이나 사숙을 매개로 결성된 문생계(門生契)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일반적으로 문생계는 특정한 학자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강회(講會)를 열면서 스승을 봉양하거나 추모할 목적으로 조직된 계를 말한다. 흔히 사문계·동문계·사은계·문인계·가숙계(家塾契) 등으로 불린다. 금산에서는 유림의 고장을 자처하는 남일면 일대에 비석제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뿌리 깊은 유학의 전통은 광복 전후까지 이어져 숱한 향선생이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학문에 뜻을 둔 문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담장 너머로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또 각 문하에서 배출된 문인들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사숙을 열고 제자를 가르쳤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훗날 스승의 유풍이 없어질세라 다투어 문생계를 조직하여 추모비를 세우고 해마다 비석제를 지내고 있다.

[절차]

비석제는 대체로 유교식 제례를 따른다. 그 절차는 진설-분향-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사신-분축-음복 등의 순으로 거행된다.

[축문]

죽포(竹圃) 신영석[1875~1912]을 기리는 비석제의 축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포 신 선생의 영께 밝게 고하나이다./ 감히 엎드려 생각건대 스승님으로 모시고/ 도덕을 본받아 높이 사모하고 우러러봄이/ 오래갈수록 더욱 새롭습니다./ 이제 막춘을 당하여 하찮은 음식 드리오니/ 신께 오셔서 흠향하옵소서.

[현황]

비석제는 다른 지역에서 보고된 사례가 거의 없는 금산 지역 특유의 지역 문화 전통이다.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에 의하면, 스승의 비석 건립 및 제향을 전제로 성립된 문생계는 25개, 대상 인물은 27명이다. 남일면의 경우 월주(月州) 곽 선생 등 19개의 문생계가 최근까지 명맥을 잇고 있어 다수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에서만 무려 10개의 문생계와 11명의 향선생이 제향 인물이 되어 명실공히 비석제의 중심지로 자리매김을 했다.

비석제의 면모를 살펴보면, 비석제의 효시가 된 죽포 신영석의 입설계(立雪稧)를 비롯, 경암(敬庵) 곽병훈(郭秉勳)의 초산입설계(草山立雪稧), 김덕수(金德洙)를 추모하는 난포계(蘭圃稧), 유덕자 곽병무(郭秉武)의 선덕을 기리는 숭덕계(崇德稧), 국당(菊堂) 김용(金容)을 스승으로 하는 사문계(師門稧), 현산(峴山) 김병용(金炳庸)의 현산계(峴山稧), 남당(南堂)·남은(南隱)의 삼호계(三乎稧), 초은(草隱) 곽태용(郭泰鎔)의 초은계(草隱稧) 등이 있다. 이들 문생계는 1914년 죽포 신영석과 1919년 경암 곽병훈의 입설계를 시작으로 1950~1970년대 집중적으로 결성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부터 금산문화원에서 ‘비석제’ 행사로 추진하여 난포 김덕수를 비롯한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 인근의 12명의 향선생에 대한 단체 제향과 더불어 지역민과 함께하는 체험 및 공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금산의 비석제는 유교 문화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충청남도 금산군 남일면 초현리는 일찍이 고려 말엽 성리학의 수용에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던 윤택(尹澤)[1289~1370]·윤귀생(尹龜生)[1317~1381]·윤소종(尹紹宗)[1345~1389] 삼부자가 은거하여 학문을 가르쳤던 곳이다. 또한 조선 초에는 단종조의 충신 곽사(郭師)가 인연을 맺었고, 그 후예인 현풍 곽씨·영산 신씨·금산 김씨 등 재지사족의 후예들이 속속 세거하면서 세칭 유림의 고향으로 일컬어져 왔다. 이처럼 유서 깊은 유교 문화의 전통은 광복 이후까지 마을 사람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고, 금산의 두드러진 특색이라 할 비석제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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