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1138
한자 新坪里 新塔 塔祭
이칭/별칭 신탑 탑제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신평리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박종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 시기/일시 1936년 - 신평리 신탑 탑제 시작
성격 탑제
신당/신체 돌탑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신평리 신탑마을에서 탑신께 마을의 안녕과 재액 퇴치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신탑마을서대산 서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신탑마을 입구에는 금산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의 탑이 하나 있다. 주민들은 수구를 막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매년 신평리 신탑 탑제를 지내며 마을 안녕과 재액 퇴치, 농사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신탑마을의 탑은 1936년에 쌓은 것으로 전한다. 당시 신탑마을 농가에서 이유 없이 소가 죽어 나갔다. 주민들이 연유를 몰라 애를 태우고 있는데 지나가던 한 노인이 “마을 앞에 있는 용암산 용바위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용바위에서 뿜어대는 살(煞) 기운 때문에 소가 죽는다. 기운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탑을 쌓으라.”고 하였다. 주민들은 노인의 말을 듣고 동구에 탑을 쌓았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탑은 대로에서 마을 소로로 진입하는 초입에 위치한다. 탑을 쌓을 당시 주민들이 돌을 구해 왔다. 이때 동쪽에서 구해온 돌은 탑의 동쪽에, 서쪽에서 구해온 돌은 탑의 서쪽 부분에 쌓았다고 한다. 탑은 전체적으로 원통형에 가깝고 상부에 머릿돌이 세워져 있다. 탑의 규모는 높이가 2m 정도이고 둘레는 11m에 이른다. 금산군 일원의 탑 가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탑의 전면에 상석을 놓았다. 돌탑에 이웃하여 두 개의 선돌이 있다. 이 선돌을 각각 남근석과 여근석으로 부르는 이도 있다. 이는 이들 선돌이 다소 남녀 성상징을 닮은 데서 나온 듯하다.

[절차]

신평리 신탑 탑제는 제관을 정하여 시행된다. 제관은 삼헌관과 축관 등이다. 이 마을 제의는 엄숙형에 가까워 제관들이 근신 생활을 한다. 제사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도 부정이 끼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의는 제물 진설, 초헌관 헌주례, 축관 고축, 아헌관과 종헌관이 차례로 헌주 배례, 소지 올림의 순으로 진행된다. 소지는 탑신소지, 대동소지, 주민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에 제관은 “금년에도 신탑리 주민 모두 건강하시옵고, 무사태평하며, 수재, 천재, 재앙 막아 풍년 들게 해 주시옵고,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기를 축원하옵니다.”라고 기원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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