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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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弘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범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민보군.
[개설]
한홍규는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동학농민군에 맞서 조직된 민보군의 호군감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활동 사항]
전주화약이 체결되고 농민군은 해산되었으나 일본군은 철수하지 않고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군은 제2차 봉기를 일으켰다. 금산에서도 2차 봉기의 여파가 일어났다. 최초의 전투는 1894년 10월경 진산에서 금산으로 가는 길목인 부수암에서 일어났다. 민보군의 무대장 정지환, 포대장 정두섭과 더불어 호군감 한홍규는 금산과 진산의 경계에 있는 소라니재[송원치]를 방어하고 있었다. 농민군은 부수암 주위를 포위한 가운데 민보군의 일부를 부수암 쪽으로 유인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결과 민보군 쪽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어 금산읍으로 들어가는 길목 세 곳에서 두 번째 전투가 치러졌다. 동학농민군은 군사적으로 우세를 점하여 결국 금산 읍내를 점령하였다. 소라니재 전투에서 민보군 지휘부가 많이 사망하였는데, 호군감 한홍규도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한홍규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1912년 의사한공순절비(義士韓公殉節碑)가 세워졌다. 기우만(奇宇萬)이 글을 짓고, 송병화(宋炳華)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