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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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志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범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활동한 향리.
[활동 사항]
동학농민운동이 전라도 고부에서 일어난 직후 금산 지역에도 동학농민군이 들어왔다. 진산군[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 동학농민군이 주둔하자, 금산의 양반과 보부상, 향리들이 매우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금산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반동학농민군 세력이 매우 강성한 지역이었다. 집강소가 금산에 설치되자 1894년 5월 민보군이 결성되었는데, 민보군 결성을 주창한 인물이 바로 금산군 향리 정지환이었다.
정지환은 다른 향리들 및 금산에 세거하던 유생들과 논의하여 민보군을 결성하고 민보군 무대장(武隊長)이 되었다. 한편 양호도순무영에서는 정지환을 순무영 군관으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제2차 농민봉기 직후인 1894년 10월 22일, 진산에서 금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던 부수암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민보군 무대장 정지환을 비롯한 여러 인물이 소라니재[송원치]에서 방어하였으나 많은 사상자를 남겼다. 소라니재 전투에서 무대장 정지환은 금산 백성 100여 명과 함께 피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정지환은 사후 군무주사로 증직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 남산공원에는 민보군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정지환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동학농민군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1902년에 세운 비석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