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군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57
한자 珍山郡
영어공식명칭 Jinsan-g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범

[정의]

조선 시대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설치한 지방행정구역.

[개설]

현재 금산군 추부면, 진산면, 복수면 일대가 조선 시대 진산군의 관할 지역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진산군은 백제 시대 진동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진동현은 백제가 탄현을 지키기 위해서 설치하였다고 하며, 고려 시대에는 북동쪽의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 지리지에 “진산은 대둔이다. 사방 경계는 동남쪽으로 금산에 이르는데, 동쪽이 11리, 남쪽이 10리요, 서쪽으로 고산에 이르기까지 5리, 북쪽으로 충청도 연산에 이르기까지 10리이다. 태실은 군의 주산 북쪽 15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내용]

조선 시대 이래 진산군에는 종4품의 군수가 파견되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훈도도 파견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파견되지 않았다. 훈도는 500호 이상의 고을에는 모두 파견하기로 하면서 설치된 것이었다. 진산군의 명칭으로는 옥계(玉溪), 진동(珍同), 진주(珍州) 등이 있었다. 군수는 종4품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를 겸하였다. 1455년 각 지역에 거진을 설치하고 주변 군현을 좌익, 중익, 우익으로 나누는 익군체제가 형성될 때 진산은 전주도의 좌익이 되었다. 조선 후기 영장제가 시행되면서 여산에 후영이 설치되자 후영의 속읍이 되었다.

[변천]

진산군은 본래 백제의 진동현(珍同縣)이었다. 757년 웅주도독부의 관내 황산군(黃山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후삼국 시기에는 후백제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전주도의 관내 진례현(進禮縣)의 속현이 되었다. 1390년 고산감무(高山 監務)가 겸임을 하게 하여 고산현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 시대로 들어와 만인산태조의 태실이 묻히게 되자 지진주사(知珍州事)로 승격되었다. 1413년에는 다시 지금의 진산군으로 고치고 1466년에는 지군사 대신 군수를 파견하였다. 1895년 공주부에 속하였다가, 1896년 전라북도에 편입되었고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과정에서 금산군과 통합되었다. 통합 당시 진산군의 동일면과 동이면은 추부면, 북면과 일남면은 복수면, 서면, 이남면, 군내면은 진산면으로 통합되었다.

[의의와 평가]

진산군은 충청남도 금산군 중에서도 진산면을 중심으로한 서쪽 지역의 옛 지명으로, 진산군의 행정구역 변화 과정을 보면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금산군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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