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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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珍同縣 |
영어공식명칭 | Jindonghy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문경호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 지방행정구역.
[개설]
진동현(珍同縣)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에 설치되었던 고려 시대의 지방행정구역이다. 진동현은 현재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일대에 있었던 진례현의 속현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본래 백제의 진동현(珍同縣, 珍洞縣)으로, 신라 영토가 된 이후 황산군[연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때 진례현[금산군]에 내속시켰으나 1390년(공양왕 2)에 고산군감무가 겸하게 하였고, 조선 건국 후인 1393년(태조 2) 태조의 태실이 만인산에 묻히면서 진주(珍州)로 승격하여 지사관(知事官)을 두었다. 1413년(태종 13) 진산군이 되었고, 1466년(세조 12) 지군사를 군수로 바꾸었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7, 잡지5 지리3 황산군 진동현, 『고려사(高麗史)』 권11, 지리2 전라도 진례현 진동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 진산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3, 전라도 진산군 건치연혁, 『여지도서(輿地圖書)』 진산 건치연혁 등에서 진동현의 기록이 전해진다.
[내용]
진동현은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의 옛 행정구역 명칭이다. 진산은 본래 백제 시대 진동현(珍同縣, 또는 珍洞縣)이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지명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황산군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가 건국된 후에는 진례현의 속현으로 삼았다. 그 후 1390년(공양왕 2)에 고산에 감무를 파견하면서 진동까지 겸임하게 함에 따라 진례의 관할에서 고산으로 넘어갔다. 진동현의 별호는 옥계(玉溪)였다.
[변천]
『여지도서(輿地圖書)』 고적편에는 원산의 고현이 군 동쪽 30리 지점에 있으며, 옥계와 진동의 옛 현을 옮길 때 원산을 폐하고 그것에 통합하였는데, 지금의 군명인 진산은 진동과 원산에서 각각 한 글자씩을 취하여 합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태조 때 옥계도호부를 설치하여 만인산 태봉에 태조의 태실을 조성하면서 진주군이라고 부르다가 태종 때 전국의 지명이 개편되면서 진산이 되었다. 이후 1914년에 일본이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금산군에 통합되어 현재의 진산면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본래는 삼국 시대 황산현에 속하였다가 고려 시대에는 진례현의 속현이 되었다. 이후 공양왕 대에 이르러 여러 고을에 감무를 파견할 때 진산 일대는 고산감무가 함께 관할하면서 고산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된 후 태조의 태실이 만인산에 봉안되면서 진산이 다시 한번 부각되었다. 이에 따라 지진주사(知珍州事)로의 승격이 있었으나 태종 대에 읍격을 규모에 따라 조정하고 개칭할 때 진산군이 되었다. 속현에서 주현으로의 변화, 읍격의 상승과 강등을 잘 보여주는 사례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