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348
한자 進禮縣
영어공식명칭 Jinryehyu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문경호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 지방행정구역.

[개설]

진례현은 본래 백제의 진내군(進乃郡) 또는 진내을군(進乃乙郡)이었으나 신라 경덕왕 때 진례군(進乃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강등되어 진내현이 되었으나 1305년(충렬왕 31)에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의 진례현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을 중심으로 하는 현령관급의 지방행정구역이었다.

진례현의 건치연혁을 소개하고 있는 자료로는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 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이 있다. 통일 신라 시대 진례군이성현(伊城縣), 청거현(淸渠縣), 단천현(丹川縣)을 영현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영현이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속현을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이 향리를 통해 관할하는 군현을 일컫는다. 이성현은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으로 현재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일대이고, 청거현은 백제의 물거현으로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용담면 일대이며, 단천현은 백제의 적천현(赤川縣)을 단천으로 개명한 것으로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일대이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3 진례군,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2 전라도 진례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1, 전라도 전주부금산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3, 전라도 금산군 건치연혁, 『여지도서(輿地圖書)』 전라도 금산군읍지 건치연혁, 『금산군읍지(錦山郡邑誌)』 건치연혁 등에서 진례현에 관한 기록이 전해진다.

[내용]

진례현은 본래 백제의 진잉을군(進仍乙郡) 또는 진내군(進乃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진례(進禮)로 고쳤고, 고려 건국 이후에는 진례현으로 낮추었다.

이후 1305년(충렬왕 31)에 진례현 출신 김신(金侁)이 원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여 요양행성(遼陽行省)의 참정(參政)으로 있으면서 고려를 위해 공을 세웠다고 하여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승격시켰다.

1413년(태종 13)에 유수부(留守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관(牧官)을 제외하고 그밖에 “주(州)”자가 붙는 단부(單府)와 군(郡)·현(縣)은 모두 ‘산(山)’자, ‘천(川)’자로 고친다는 원칙에 따라 금산군으로 고쳤다.

[변천]

고려 건국 이후에는 군이 현으로 강등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영현은 2개가 더 늘어나 5개가 되었다. 고려 시대에 새로 진례현의 속현이 된 지역은 무풍현[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무풍면]과 진동현[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일대이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에 지방민들의 동향이나 특정 인물의 공헌에 따라 읍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진례군진례현으로 강등되었다가 김신의 활약으로 지금주사가 되었다. 지역 단위의 읍격 변화는 과거인원의 선발, 각종 부세제도나 정치적 혜택 등에 차이가 있었으므로 읍격이 달라지는 것은 단체로 처벌 또는 상을 받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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