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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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山 星谷里 - 木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성곡리 비실마을에서 정월 초사흗날 목신께 마을의 안녕과 농사 풍년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비실마을은 순수 농촌으로, 진악산 아래에 위치한 산골 마을이다. 벼랑이 있어 벼리실이라 불리다 변하여 비실 혹은 성곡이라 부르며, 금산인삼의 시배지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이 마을 회관 건너편 논 쪽에 수령 300년 이상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언덕 위에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신제(木神祭)를 지내고, 목신제를 마친 후에는 마을 앞쪽 삼거리에서 거리제를 지낸다. 목신제와 거리제를 언제부터 지내왔는 지는 알 수 없으나, ‘성곡리’라는 지명이 1789년의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지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내 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금산 성곡리 비실 목신제의 제당은 마을 입구에 있는 수령 300년의 느티나무로, 주민들은 ‘당산나무’라고 부른다. 나무 정면에는 상석을 놓아두었고, 그 위쪽 나무 몸통에 금줄을 두르고 짚신과 오쟁이를 매달아 두었다. 이 당산나무의 높이는 30m 이상이며, 밑 둘레가 6m로 거대한 고목이다. 나라에 변고가 발생하면 당산나무가 소리를 내며 운다는 전설이 어려 있다. 비실마을 당산나무 인근에는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주변의 허한 방위나 마을로 들어오는 액을 막기 위해 마을 입구에 비보풍수(裨補風水)의 목적으로 조영한 숲이 남아 있다.
[절차]
음력 정월 초사흗날 저녁 8시경에 목신제와 거리제를 지내는데, 만약 제사를 앞두고 부정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제사는 연기하지 않는다. 제사의 주체는 마을 주민이 결성한 ‘목신제계(契)’로, 계원들이 나무를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한다. 계를 조직하기 이전에는 호당 성의껏 걸립을 해 제비를 마련하였다. 제물은 주민들이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준비했는데, 초상을 당하면 부정하다 하여 제물을 장만할 수 없으므로 다른 집이 대신 맡곤 하였다. 제물은 돼지머리, 떡, 삼색실과, 명태포, 술 등이며, 제기는 제물을 장만하는 가정의 것을 깨끗하게 씻어 사용한다.
제사를 지내는 날 아침에 나무 주변을 청소하고, 황토를 가져다가 펴 둔다. 금줄에는 짚신 두 켤레를 꽂아 두었는데, 하나는 목신[남성]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토지신[여성]의 것이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금줄을 두르고, 정면에 짚신과 오쟁이를 매달아 둔다. 저녁이 되면 나무 앞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낸다. 헌작(獻爵), 재배 후 소지를 올리는데, 터주[토지신] 소지, 목신 소지, 마을 주민 소지의 순서대로 올린다. 제사에 참여한 주민은 개인별로 올리지만, 불참한 주민은 한꺼번에 공동 소지로 올린다.
금산 성곡리 비실 목신제를 마치면 마을 앞 삼거리에서 거리제를 지낸다. 거리에 짚을 깔고 목신제를 주관한 제관이 별도의 제물을 놓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치면 풍물을 치며 제물로 음복하며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