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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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 |
영어공식명칭 | Confucianism |
이칭/별칭 | 유학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진 |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서 행해지는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학문과 의례 및 활동 일반.
[개설]
유교는 공자에 의해 창시되어 맹자, 순자, 한유, 주자, 왕양명 등으로 이어진 사상 체계로서, 현실 생활에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등의 도덕적 덕목을 중시하며, 사람의 성품은 누구나 착하다는 기본적 입장을 담고 있다. 또한, 삼강오륜을 덕목으로 하며 사서삼경을 경전으로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수천 년 동안 중국·한국·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한자(漢字)의 도입 시기와 일치한다. 유교는 삼국 시대 이후 정치사상과 이념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고려 말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개인 수양과 생활 의례가 중시되었다. 한국의 유교는 조선의 개국과 함께 크게 발전하면서 많은 사상적 유파를 형성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이 국가 통치 이념이 되어 사회생활의 모든 면을 규정하는 틀로서 작용하였다.
유교가 종교적 체계를 갖춘 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러서였다. 문묘를 세우고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민간에서도 유교사상에 따른 제사 풍습 등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의 경우 주자학 일변도로 치달았다는 지적이 있다.
충청남도 금산 지역은 서원, 사우, 효자·열녀의 정려 등 선비들의 정서를 지닌 유교 문화 자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충청도의 상징 양반(兩班) 문화, 선비 중의 선비라고 하는 산림(山林)의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유교 문화권이 자리 잡고 있다.
[금산의 대표 유학자]
금산 지역의 유교는 불교가 국시였던 고려 때 성리학을 공부해 조선 시대 국교로 정착하게 한 야은 길재로부터 출발한다. 고려 말 1353년 경상도 선산에서 태어난 야은 길재는 부친 길원진이 지금주지사로 부임할 때, 부친을 따라 금산에서 거주하였다. 고려 말, 조선 초의 성리학자 정몽주, 이색, 권근 문하에서 공부하고 제자로는 김숙자, 김굉필, 조광조가 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면서 기호학파의 본산인 연산을 중심으로 조광조-성수침-성혼-윤선거로 학맥이 이어지고, 또 하나는 율곡 이이-김장생-김집-송시열로 학맥이 이어진다.
윤선거는 권시(權諰),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유계(俞棨), 이유태(李惟泰), 윤휴(尹鑴)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동문수학하거나 교류했다. 1638년 28세에 금산으로 은거를 한 윤선거는 금산 유학의 기초가 된다. 1642년 마하산(麻霞山)에 산천재(山泉齋)를 짓고 예학을 연구한다. 스승으로는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이 있다.
윤선거의 아들인 윤증은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될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어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하였다.
윤선거와 윤선거의 아들 명재 윤증이 금산에 정착하면서 만들었던 조선 정치의 기본 틀과 조선 백성의 지켜야 할 가정의례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뿌리는 연산의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으로부터 내려와 금산에 유교가 정착되고, 또 금산에 유교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만든 산천재 윤선거와 명재 윤증 부자의 역할이 크다고 할 것이다.
[금산의 유교 관련 문화재]
금산 지역에 현존하는 대표적인 서원, 향교, 사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청풍서원은 1678년(숙종 4)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길재의 청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례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76년과 1979년에 금산군의 지원으로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용강서원은 1716년(숙종 4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 송준길, 김원행, 유계, 송명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폐를 모셨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나, 그뒤 유림이 헐린 재목의 일부를 모아서 강당을 복원하였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었다.
금산향교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현재 하옥리 백학동에 창건되었다. 1684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21호로 지정되었다.
진산향교는 1397~1398년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84년(숙종 10)에 중건하였으며, 175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22호로 재지정되었다.
조헌사당(표충사)는 1649년(인조 27)에 건립되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중봉 조헌[1544~1592]을 모신 사당이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충렬사는 해주 오씨의 사당으로 완월당 오응정[1548~1597]과 큰아들 오욱, 둘째 아들 오직과 손자 오방언 등 3세에 걸친 4충신을 모신 사당이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청풍사는 1741년(영조 17)에 건립된 사당으로 길재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였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6호로 지정되었다.
덕산사는 밀양 박씨의 문중 사당으로, 지방유림과 후손들이 협력하여 1961년에 건립되었다. 박증영, 박훈, 박사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1985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1호로 지정되었다.
귀암사는 조선 전기의 대학자인 문양공 눌재 양성지의 학덕을 숭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다. 1988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1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