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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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英濬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병택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31일 - 유영준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만세 운동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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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거주지 -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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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유영준(兪英濬)은 1919년 3월 31일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곡남리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인물 중 한 명이다. 1919년 3월 금산 지역에서 만세 시위가 확산하던 와중, 곡남리에 거주하던 김영호, 정재철, 오연구 등은 도로 부역에 동원되어 일하다가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즉석에서 만세 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하였다. 제안을 주민들이 받아들임에 따라 현장에서 곧바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같은 도로 부역 공사장에 수영리 주민 약 200명도 나와 있었는데, 이들 역시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때 유영준은 시위가 전개될 것을 미리 알고, 준비해 온 태극기를 펼쳐 시위 행렬을 이끌었다.
만세 시위 소식을 들은 헌병 경찰은 곧바로 진압 병력을 파견하여 시위를 중단시키고, 일부 주민을 체포하였다. 헌병 경찰의 진압으로 시위가 진정되는 듯하였으나, 밤 11시경 주민들이 체포된 사람들을 구출할 것을 결의하고 진산면을 향해 행진을 벌였다. 이 시위 역시 일제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일부 주민은 산 위로 올라가 횃불을 올리는 등 독립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