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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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具鎬烈 |
영어공식명칭 | Koo Hoyeo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승훈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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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구호열,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만세 시위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40년![]()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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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구호열(具鎬烈)[1899~1940]은 1899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에서 태어났다. 구호열은 1919년 3월 초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전해 듣고, 김용술, 임승환 등의 금산면 청년들과 함께 금산읍 장날에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2일 밤 김용술과 임승환은 김용술의 집에서 만세 시위의 취지와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이 담긴 「금산경고(錦山警告)」를 작성하였고, 금산면 면서기 김종구는 면사무소 등사판으로 「금산경고」 150여 매를 인쇄하였다. 3월 22일 구호열은 시위 주도자들로부터 「금산경고」의 배포를 부탁받았다.
3월 23일 구호열은 김용술, 임승환, 변희조와 함게 금산읍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금산경고」를 나누어 주었고, 시위대의 일원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금산읍 만세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일본 헌병에 체포된 구호열은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상훈과 추모]
구호열은 1995년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