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60
한자 徐章玉
영어공식명칭 Seo Jangok
이칭/별칭 서인주(徐仁周),일해(一海)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헌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883년 - 서장옥 동학 입도
활동 시기/일시 1892년 - 서장옥 교조신원운동 주도
몰년 시기/일시 1900년연표보기 - 서장옥 사망
성격 동학 지도자
성별
대표 경력 동학 남접대도주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동학 지도자.

[개설]

19세기 조선 사회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인한 관료들의 부패와 삼정의 문란에 따른 내정 파탄의 여파는 특히 백성들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19세기 이후 민란이 폭증한 것은 그 징후였고, 더하여 서세동점의 흐름은 외부에서의 충격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1860년(철종 11) 4월에 최제우(崔濟愚)에 의해 창도된 동학은 급격하게 세를 확장하였다. 동학은 교조 최제우가 사형당하는 고난을 겪는 와중에도 거대한 민중 운동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동학농민운동의 여파가 미친 것은 1862년이었다. 『오하기문』에 동학 교조 최제우가 진산과 금산의 산골을 왕래하면서 동학을 포교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서장옥은 최시형(崔時亨)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으며, 남접대도주로서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하였다.

[가계]

서장옥의 정확한 가계는 알 수 없으며, 충청북도 청주 출신의 승려로 알려져 있다. 다만,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은 서장옥을 경기도 수원 출신이라고 하였으므로, 정확한 출생지 역시 확정하기 힘들다. 이명은 서인주(徐仁周)이고, 호는 일해(一海)이다.

[활동 사항]

서장옥은 1883년에 동학에 입도하였고, 주로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서 동학 포교에 진력하였다. 서장옥은 동학 2대 교주인 최시형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인물이다. 1887년에는 최시형과 강원도 정선군에서 함께 수련하였다. 서장옥이 1889년 10월 체포된 후 1890년 유배형에 처하여지자, 최시형은 구명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고 기도를 하기도 하였다. 서장옥은 이러한 최시형과의 친분과 동학 포교 활동 경력을 발판으로 교단 내에서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였다. 서장옥을 따르는 무리를 서포(西包)라고 불렀다. 1892년 6월에 석방된 후 교조신원운동을 주도하였다. 1900년 다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하여졌다.

서장옥의 주 활동 무대는 청주 일대였지만, 금산 지역 동학 지도자가 되는 조재벽에게 전교하는 등 금산 지역 동학농민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금산 지역 동학농민운동서장옥의 직간접적 영향력 아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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