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61
한자 趙在璧
영어공식명칭 Cho Jabyuk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헌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893년 1월 - 조재벽 광화문 앞 교조신원운동에 참여
성격 동학 지도자
성별
대표 경력 동학 접주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금산에서 활동한 동학 지도자.

[개설]

19세기 조선 사회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인한 관료들의 부패와 삼정의 문란에 따른 내정 파탄의 여파는 특히 백성들에게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19세기 들어서 홍경래의 난과 임술민란 등이 지속된 것은 그 징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갑자기 한반도에 불어닥친 서세동점의 흐름은 외부적 충격이었다. 1860년(철종 11) 4월에 최제우(崔濟愚)가 동학을 창도한 것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동학’이란 교조 최제우가 서교(西敎)에 대항하여 동쪽의 도를 일으킨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동학은 창도와 함께 급격하게 세를 불렸다. 교조 최제우가 사형당하는 고난을 겪긴 하였지만,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이 교세를 확장하여 나갔고, 많은 교도들을 규합하여 거대한 민중 운동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동학농민운동의 여파가 미치게 된 것은 1862년이었다. 『오하기문』에 동학 교조 최제우가 진산과 금산의 산골을 왕래하면서 동학을 포교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재벽은 동학 접주로 활동하였다.

[가계]

조재벽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출신이며, 정확한 출생일이나 가계의 내력은 알 수 없다.

[활동 사항]

조재벽은 1887년에 서장옥(徐璋玉)의 포교에 의해 동학에 입도하였다. 금산을 중심으로 충청북도 옥천·영동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893년 1월 광화문 앞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였고, 7월 2대 교주 최시형이 경상북도 상주에서 충청북도 청산으로 이주할 때 협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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