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63
한자 天主敎 珍山聖地聖堂
이칭/별칭 진산성지성당
분야 종교/기독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지방리 335-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백현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2년 - 지방리공소 설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17년 5월 29일연표보기 - 천주교 진산성지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682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천주교 진산성지성당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이전 시기/일시 2023년 3월 - 천주교 진산성지성당 신축
현 소재지 천주교 진산성지성당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지방리 335-2]지도보기
성격 성당
양식 절충식 한식 목구조[2고주 5량가]|맞배지붕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성당.

[개설]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순교[신해사옥(辛亥邪獄)]가 발생한 곳으로, 천주교 진산성지성당을 건립하여 현양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금산군 진산면윤지충(尹持忠)권상연(權尙然)이 제사 문제와 관련하여 순교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오랜 박해와 수난으로 두 순교자의 무덤은 사라졌고, 사건이 발생한 정확한 장소 또한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천주교 대전교구는 병인박해(丙寅迫害)[1866] 이전부터 있어 온 진산 가새벌교우촌의 후신인 지방리공소(芝芳里公所)를 택하여 2008년 12월 진산성지성당으로 승격하고 전담 신부를 파견하였다.

[위치]

천주교 진산성지성당(天主敎 珍山聖地聖堂)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335-2번지에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 추부IC로 나와 추부면행정복지센터에서 금산군 방면으로 1㎞ 진행하면 마전교차로가 나온다. 마전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국도 제17호선을 따라 복수면행정복지센터까지 10㎞ 직진한 후, 대둔산·전주시 방향으로 4㎞ 더 직진하면 곡남삼거리가 나온다. 곡남삼거리에서 전주시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3㎞ 가면 나오는 읍내사거리에서 논산시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실학로를 타게 된다. 실학로를 따라 3㎞ 정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까지 진행하다 보면 우측에서 천주교 진산성지성당을 만날 수 있다.

[변천]

천주교 진산성지성당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에 있던 가새벌교우촌으로부터 시작하였다. 가새벌은 이전에도 신앙인들이 정착하고 있었지만 병인박해 이후 더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든 곳으로, 1885년(고종 22) 신부 죠스가 가새벌을 방문하였을 때 교우 총인원은 42명이었다. 가새벌의 초대 공소회장인 이예규의 집안은 조불 수호 통상 조약(朝佛 修好 通商 條約)[1886년] 이후 가새벌에 정착하였다. 박해를 피해 전전하다가 가새벌에 정착한 후, 이예규의 형 이의규를 불러들여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큰 부자가 되었다. 이씨 집안의 경제적 성공은 금산군 지역의 천주교 전파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예규가 가새벌의 초대 공소회장이 된 이후 이씨 집안은 대대로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가새벌이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 본당으로 발전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20년대 가새벌의 신자들은 회장 이의규 집안을 중심으로 공소의 증축과 본당 승격 운동을 벌였다. 이의규는 현재의 지방리공소가 있는 땅을 기증하고 1927년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다. 건물 신축과 함께 이의규는 본당 운영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가새벌 뒤에 있는 산을 기증하였다. 1929년 5월 25일 가새벌공소는 지역의 행정 명칭을 따라 지방리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목포 본당의 보좌로 있던 신부 이성만[이냐시오]이 임명되었다. 이후 외국인 선교사 철수로 인한 성직자 부족과 지방리본당의 재정난으로 인해 1931년 5월 10일, 신부 이성만은 모 본당인 되재본당으로 전임되었고, 지방리본당은 2년 만에 다시 되재본당의 공소로 환원되었다. 사회 변화에 따라 발전하는 금산에 본당 자리를 내주고, 금산본당이 설립되어 성장하기까지 모태의 역할을 한 지방리공소는 공소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였다. 그러던 중 2008년 12월 천주교 대전교구는 금산군 진산면의 성지로서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여, 지방리공소금산본당으로부터 분리하여 천주교 진산성지성당으로 승격하였으며, 초대 주임으로 신부 윤인규 라우렌시오를 임명하였다. 2023년 3월에는 성당 건물을 새롭게 신축하였다.

[형태]

1927년 프랑스 선교사 박 파르트네 신부가 지은 소규모 목조 건물로, 절충식 한식 목구조[2고주 5량가]를 갖추었다. 2열의 내부 고주에 의해 가운데의 본당과 좌우 측랑(側廊)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3량식 공간이다. 건물은 직사각형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제단부[벽제대, 난간, 마루]와 지붕 구조, 내외부 기둥은 원형이다. 1960년대 초 외벽체 하부에 시멘트 벽돌을 사용하여 벽체를 보강한 공법은 그 당시로서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현관 쪽 성가대석으로 사용하던 2층과 목조 종탑은 안전 문제로 철거하였고, 종탑은 2004년 현재의 시멘트 벽돌조의 종탑으로 재보수하였다.

[현황]

천주교 진산성지성당은 2017년 5월 29일에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 제682호로 지정[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되었으며, 매년 현양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021년 3월 11일 완주 초남이성지[유항검] 바우배기 일대[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169-17번지]를 성역화하는 과정에서 윤지충권상연, 윤지헌으로 추정되는 묘와 유해가 발견되었다. 묘에서는 각자의 인적 사항이 적힌 백자 사발지석도 출토되었다. 지석의 기록은 세 명의 인적 사항과 일치하였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유해의 진정성 확인을 위해 6개월에 걸쳐 고고학적·해부학적 조사를 진행하였고, 2021년 9월 1일 성해(聖骸) 진정성의 교령(敎令)을 선포하였다. 그리하여 2023년 5월 27일 새 성당 봉헌식과 함께 232년 만에 찾은 윤지충, 권상연, 윤지헌의 유골을 기념 성전에 안치하였다. 천주교 진산성지성당 근처에 신축한 기념 성전은 윤지충권상연, 윤지헌의 유해가 발굴된 천주교 전주교구 초남이성지 바우배기 순교자의 무덤 배치 형태에 따라 왼쪽 윤지충 묘소 자리에 성당을, 오른쪽 권상연 묘소 자리에 전시실을, 오른쪽 전시실 아래 윤지헌 묘소 자리에 강의동을 지었으며, 성당과 전시실 사이에 세 명을 기억하는 기념상을 세웠다.

[의의와 평가]

천주교 진산성지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지라는 점에서 한국사 및 천주교회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오랜 박해로 인해 찾을 수 없었던 최초 순교자의 유해가 발견되었고, 232년 만에 신축 기념 성당에 안치함으로써 성지의 의미가 더욱 깊어졌다. 또한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본래 성당은 초기 한식 목구조[절충식]의 고유한 양식과 의장적 요소가 남아 있는 한국 천주교의 유산으로서, 건축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