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리공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926
한자 芝芳里公所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지방리 335-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백현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지방리공소 설립
해체 시기/일시 2008년연표보기 - 지방리공소에서 진산성지성당으로 승격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7년 5월 29일 - 천주교 진산성지성당 국가등록문화재 제682호 지정
현 소재지 지방리공소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지방리 335-2]지도보기
성격 공소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에 있었던 천주교 공소.

[개설]

지방리공소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가새벌에 설립된 공소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8년 진산성지성당으로 본당 승격 후 최초 공소 자리에는 사제관이 건립되었다.

1791년 진산사건이 발생한 후 진산 지역에는 천주교가 잠시 주춤하였으나 새로운 신앙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지방리공소는 그 중 하나이다. 지방리공소는 본래 가새벌에 있었다. 가새벌은 1866년 병인박해 이전에 형성된 교우촌으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와 살던 곳이다. 병인박해가 시작된 이래 탄생한 세명의 순교자가 가새벌 출신이다.

[변천]

박해가 끝난 후 가새벌에 큰 공소가 형성되자 초대 회장이 기증한 땅[현재 진산성지성당 위치]으로 공소를 옮겼다. 1927년 성당을 건립하고, 11월 5일 봉헌식을 가졌다. 이때 공소의 소속은 전주교구 되재본당이었다. 이후 본당 유치에 적극 나서 1929년 초대 주임신부가 파견되어 지방리성당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성직자가 부족해지자 1931년 다시 공소로 되었고 이후 금산에 본당이 설립되면서 지방리금산성당 산하의 공소로 계속 남게 되었다. 2008년 천주교 대전교구는 지방리공소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진산성지로 채택하고 금산본당으로 부터 분리하여 본당 승격시켰다.

[현황]

지방리공소는 2008년 진산성지성당으로 본당 승격되었으며, 지방리공소가 처음 세워진 자리에는 대전교구 사제관이 건립되었다.

[의의와 평가]

지방리공소는 두 가지 면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자생적 교우촌에서 시작하여 순수한 교우들의 힘으로 본당승격까지 이루어진 공소이며 본당 건물은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둘째는 금산본당과 진산성지 기념 성당의 모체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최초 공소가 있었던 자리에 사제관과 신자들의 묘지를 모시고 있어 공소의 역사적 의미는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이제 지방리공소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한국 천주교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 많은 신자들의 순례와 최초 순교지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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