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41
한자 崇義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일흔이재로 147[내부리 26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4년 - 숭의재 개축
문화재 지정 일시 2011년 8월 16일연표보기 - 숭의재 금산군 향토유적 제15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숭의재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숭의재 -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일흔이재로 147[내부리 266]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3칸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내부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무관 전충노를 배향한 사당.

[개설]

숭의재(崇義齋)는 고려 말 홍문관대제학과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전익(全翊)의 5대손인 대호군(大護軍) 전충노(全忠老)를 배향한 사당이다. 전충노는 세종 대에 전라도 담양도호부사를 지낸 전순생(全順生)의 아들로, 금산군의 천안 전씨(天安 田氏) 시조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였는데, 20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김종서와 함께 여진족을 몰아내고 육진(六鎭) 지역을 개척하였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키고 단종을 죽이자 벼슬에서 물러나 금산 지역에 은거하였으며, 이후 전충노의 후손이 금산 지역에 정착하여 천안 전씨의 세거지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연산군 대에 무오사화(戊午士禍), 갑자사화(甲子士禍)가 일어나자 전충노가 벼슬을 버리고 금산 지역으로 입향하였다고도 전한다.

[위치]

숭의재금산군 군북면 내부리 266번지에 있다. 금산군 군북면의 일흔이재로를 따라 철마산(鐵馬山) 방면으로 향하는 내부2리 길가에 자리한다.

[변천]

1954년에 숭의재를 개축하여 충효예 교실로도 사용하고 있다.

[형태]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사당 바깥에는 천안 전씨 대제학 전익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 있다. 비교적 최근에 건립한 비석으로,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비신과 머릿돌이 올려져 있는 형태이다.

[현황]

숭의재는 2011년 8월 16일에 금산군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10월 4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숭의재천안 전씨로서 금산군 지역에 입향한 전충노를 배향하는 사당으로서, 지역에 세거하는 천안 전씨의 문중 활동을 보여 주는 유적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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