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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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寶石寺 大雄殿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30[석동리 71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
집필자 | 박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3년 1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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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보석사 대웅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보석사 대웅전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30[석동리 711]![]() |
성격 | 대웅전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정면 3칸 |
측면 칸수 | 측면 3칸 |
소유자 | 대한불교조계종 보석사 |
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보석사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보석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 불전.
[개설]
보석사(寶石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885년(헌강왕 11)에 조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절 앞산에서 금을 채굴하여 이를 재료로 삼아 불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보석사’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상세하지 않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사찰을 고종 연간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중창하여 원당으로 삼았다. 1912년에는 본산으로서 33개의 말사를 거느리기도 하였다.
[위치]
보석사 대웅전(寶石寺 大雄殿)은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11번지 보석사 안에 있다.
[변천]
보석사 대웅전은 통일 신라 시대에 건립되었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2고주 5량집의 구조이며, 측면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널판장인 풍판(風板)이 설치되어 있다. 전각 내에는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을 안치하고 있다. 불상 위쪽으로 닫집의 천장을 달아 놓았다. 기단은 사괴석으로 되어 있으며, 여러 단을 쌓았다. 가운데에 계단을 두었고 초석은 덤벙주초이다. 기둥은 모두 배흘림이 들어간 두리기둥으로 되어 있다. 공포는 삼출목(三出目) 다포식으로 구성되었고,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를 두었다. 외부로 뻗어 있는 살미 끝은 소 혓바닥 모양으로 되어 있다. 기둥 밖으로 창방 뺄목 아래에는 하단부를 연화두 모양으로 조각한 받침을 끼웠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설치하였고, 실내 바닥은 우물마루로 짰다. 정면 창호는 띠살문 4분합이고, 양 협간(夾間)은 띠살문 3분합이다. 양 측면에는 정면 쪽으로 하나씩 띠살 홑문을 달았다. 단청은 선모루 단청을 하였다.
[현황]
보석사 대웅전은 1993년 11월 12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43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소유자 및 관리자는 대한불교조계종 보석사이다. 경사진 구릉의 마당 한가운데에 보석사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이 ‘口’ 자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보석사는 깊은 골짜기 안에 있어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대지가 매우 협소하다. 보석사 대웅전은 이러한 입지 조건 때문인지 건물의 외형이 소박한 모습이다. 그러나 작은 규모이면서도 다포식으로 규모 있는 공포를 구성하였고, 선모루 단청을 하여 보석사 경내에서 가장 품격 있는 중심 건물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한편, 보석사 대웅전 오른편에는 의승장 영규(靈圭)가 머물렀던 의선각(毅禪閣)이 있어 보석사 대웅전의 성격이 무엇인지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