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관아 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465
한자 錦山官衙 -
이칭/별칭 금산관아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인삼로 69[상리 176-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금산관아 터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인삼로 69[상리 176-9]지도보기
성격 관아 건물 터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관아 건물 터.

[개설]

관아(官衙)는 관서(官署), 공해(公廨)라고도 하며 과거 금산 지역을 관할하던 군수 등이 머무르면서 정무를 보던 곳이다. 현재의 금산군은 조선 시대 금산 지역과 진산 지역이 합쳐진 곳으로, 금산 지역의 관아 터로 금산관아 터진산관아 터가 각각 존재한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금산관아(錦山官衙)에는 정귀진이 세운 공관과 김위민이 세운 동헌(東軒)이 있었고, 1656년(효종 7)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 따르면 객관과 향사당, 연무당이 있었다. 또 1792년(정조 16)에 편찬된 『금산군읍지(錦山郡邑誌)』에 따르면 금산관아에는 객사와 아사, 군기, 향청, 작청, 노비청, 훈련청이 있었다.

[변천]

금산관아에 있던 금산객사는 동학 농민군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하였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금산공립보통학교로 사용되었다. 1939년에 봉안전과 동대청·서대청이 무너졌고, 이후 1958년에 완전히 소실되었다. 현 금산중앙초등학교의 교사 자료 전시실에 ‘금계관(金溪館)’ 현판만이 전한다.

[위치]

금산관아 터금산군 금산읍 상리 금산초등학교 일대에 있다.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 등이 사용하던 숙소 금산객사의 터는 금산군 금산읍 상옥리 137-1번지 금산중앙초등학교에 있다.

[현황]

금산관아 터는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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