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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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山郡 |
영어공식명칭 | Geumsan-g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범 |
[정의]
조선 시대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구역.
[개설]
현재 금산읍, 금성면, 제원면, 남이면, 남일면, 부리면 일대가 조선 시대 금산군의 관할 지역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백제 시대 현 금산군 지역은 진내군(進乃郡) 또는 진잉을군(進仍乙郡)이라고 불렸다.
[내용]
조선 시대 이래 금산군은 종4품의 군수가 파견된 군현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훈도도 파견되었으나, 조선 후기에는 훈도를 파견하지 않았다. 군의 명칭으로는 진내(進乃)·경양(景陽)·금계(錦溪)·진례(進禮)·금주(錦州) 등이 있었다. 금산군수는 종4품의 병마동첨절제사를 겸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금산군의 풍속은 “순박하고, 농사와 뽕나무 일에 힘쓰며, 송사는 간략하고 백성은 질박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면(面)의 구성은 군일, 군이, 동일, 서일, 서이, 군북, 부남, 부서, 부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에서 군북~부북까지는 옛 부리현의 영역이었다. 한편 동남쪽에는 특별행정구역인 대곡소(大谷所)가 있었다.
[변천]
금산군은 본래 백제의 진내군(進乃郡)이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후 경덕왕 대가 되면 진례군(進禮郡)이라고 불렀다. 고려 시대에는 현령(縣令)으로 강등되기도 하였으나 1305년(충렬왕 31) 진례현을 금주군(錦州郡)으로 다시 승격시켜 지금주사로 삼았다. 진례현 출신의 김신(金侁)이 원나라에서 벼슬하여 요양행성참정이 되었는데, 고려와 원과의 관계에서 공이 있었으므로 김신을 지금주사(知錦州事)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부리현 등의 5개 현을 금주군으로 이속시켰다. 진산의 진동현도 이때 금주군에 소속되었다. 1413년(태종 13) 금주군은 금산군(錦山郡)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에 진산군을 금산군으로 편입시키고, 금산군의 13개면과 진산군의 6개면을 통폐합하여 10개 면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