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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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校村里 碑石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현 소재지 | 교촌리 비석군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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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비석군 |
관련 인물 | 이도재(李道宰)|송각로(宋恪老)|이후식(李候埴)|오영석(吳榮錫)|이해경(李海慶)|조용하(趙龍夏)|유치홍(兪致弘)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군.
[개설]
교촌리 비석군(校村里 碑石群)은 19세기~20세기에 진산 지역을 다스렸던 진산군수의 선정을 기리는 비석들이다. 조선 시대 금산 지역을 다스렸던 진산군수와 관련한 비석은 6기로, 대부분이 19세기에 진산군수를 지낸 인물들을 기리는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이다. 이와 함께 20세기 초 충청남도관찰사를 지낸 이도재(李道宰)의 불망비도 있다. 나머지는 비교적 최근에 세워진 것으로, 향교 업무에 치적이 있는 진산향교(珍山鄕校) 전교를 기리는 비석들이다.
[건립 경위]
교촌리 비석군의 비석은 19세기 금산 지역을 다스렸던 진산군수와 향교 업무에 치적이 있던 전교를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대부분 19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교촌리 비석군은 금산군 진산면 교촌리 355번지에 있는 진산향교 앞에 자리한다.
[형태]
가장 뒤쪽에 나열되어 있는 7기는 진산군수의 공덕을 기리는 선정비와 불망비로 모두 지붕돌이 없는 형태이다. 7기의 비석 중 왼쪽에 있는 비석 3기는 충청남도관찰사 이도재, 진산군수 송각로와 이후식의 선정비로, 받침돌이 보이지 않고 비신(碑身)만 드러나 있으며, 비신은 호패형이다. 옆으로 진산군수 오영석과 이해경의 불망비가 있으며, 비신은 방형이다. 오른쪽 비석 2기는 진산군수 조용하와 유치홍의 선정비로 받침돌 위에 호패형의 비신이 올려져 있다.
[금석문]
진산군수와 관련한 비석 중 왼쪽의 비석 3기의 비명은 ‘관찰사이공도재영세불망비(觀察使李公道宰永世不忘碑)’, ‘군수송후각로사비(郡守宋候恪老去思碑)’, ‘군수이후식애민선정비(郡守李候埴愛民善政碑)’이고 그 옆 2기의 비명은 ‘군수오후영석선정불망비(郡守吳候榮錫善政不忘碑)’, ‘군수이후해경영세불망비(郡守李候海慶永世不忘碑)’이다. 오른쪽 비석 2기의 비명은 ‘군수조후용하선정비(郡守趙候龍夏善政碑)’, ‘군수유후치홍애민선정비(郡守兪候致弘愛民善政碑)’이다.
[현황]
진산군수와 관련한 선정비, 불망비가 가장 뒤쪽에 나열되어 있으며, 그 앞으로 향교 전교의 송덕비가 놓여 있다.
[의의와 평가]
교촌리 비석군은 19세기 금산 지역을 다스렸던 지방관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