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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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慄 將軍 梨峙大捷碑 |
이칭/별칭 | 원수권공이치대첩비(元帥權公梨峙大捷碑)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89[묵산리 산79-3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규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537년 - 권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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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599년 - 권율 사망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36년 - 송병선 출생 |
건립 시기/일시 | 1866년![]()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05년 - 송병선 사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44년![]() |
이전 시기/일시 | 1964년 - 권율장군이치대첩비 이전 |
보수|복원 시기/일시 | 1964년![]()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1년 - 권율장군이치대첩비 성역화 사업 시행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권율장군이치대첩비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권율장군이치대첩비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89[묵산리 산79-34]![]() |
원소재지 | 권율장군이치대첩비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금곡![]() |
성격 | 대첩비 |
관련 인물 | 권율(權慄)|송병선(宋秉璿) |
크기(높이,너비,두께) | 206㎝[높이]|72㎝[폭] |
소유자 | 금산군 |
관리자 | 금산군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에 있는, 권율 장군의 이치대첩 승전을 기리기 위한 개항기 대첩비.
[개설]
권율장군이치대첩비(權慄將軍梨峙大捷碑)는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1537~1599]이 이끄는 군대가 이치(梨峙)에서 전라도로 침입하는 왜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사건을 기념한 비석이다.
[건립 경위]
이치는 금산 지역에서 전라도 전주 지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개이다. 따라서 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점령하려 하였던 왜군은 금산 지역을 거쳐 전라도 전주 지역으로 향하기 위해 이치고개를 지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광주목사 권율은 동복현감 황진과 이치에 진을 치고 왜군을 막았다. 권율과 황진은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하여 이치를 지켰고, 왜군의 전라도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 권율의 후손이 행주에는 비가 있지만 이치에는 비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겨 대첩비 건립을 추진하였고, 이후 1866년(고종 3) 이치대첩(梨峙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현재의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에 대첩사(大捷祠)와 함께 권율장군이치대첩비를 건립하였다. 비문은 19세기 송병선(宋秉璿)[1836~1905]이 짓고 송성용이 썼다. 1944년 일제 경찰에 의해 비석이 폭파되고 사당이 훼철되었으나, 이치대첩에 참여한 사람들의 후손과 지역 유지들이 1964년에 비문을 다시 새겨 현 위치에 건립하였다.
[위치]
권율장군이치대첩비는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산79-34번지, 이치고개와 마주 보고 있다. 본래 이치 전쟁터에서 약 10㎞ 떨어진 금산군 금성면 상가리 금곡에 있었는데, 싸울 때의 이치대첩 쇳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1964년에 다시 건립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형태]
새로 세운 권율장군이치대첩비는 석비로, 높이는 206㎝, 폭은 72㎝이다. 귀부와 비신, 이수를 모두 갖추었다.
[금석문]
전면에 ‘원수권공이치대첩비(元帥權公梨峙大捷碑)’라고 써 있고, 옆면에는 장군 권율 휘하에서 이치대첩에 참가하였던 사람들의 이름과 출신지가 새겨 있다. 뒷면에는 ‘도원수권공 이치대첩비문’ 1,300여 글자가 적혀 있으나 20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 비문의 내용은 권율에 대한 소개와 이치대첩의 의의, 전투 과정, 비를 이치에 세운 이유 등이다.
[현황]
권율장군이치대첩비는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고시 제2021-141호 「문화재 지정[등록]번호 삭제 및 문화재명 표기 방식 변경 고시」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1991년 성역화 사업을 시행하여 ‘충장사’라는 이름의 사당을 짓고, 권율장군이치대첩비와 권율 장군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이치대첩 무궁화동산을 지나 이치대첩문으로 들어가면 비석과 비각을 볼 수 있다. 비각에는 ‘대첩비각’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비각 안에는 복원된 비석과 파괴된 비석의 상단 일부가 함께 보관되어 있다. 비각 뒤로 충장사와 연결되며, 매년 8월 26일에 충장사에서 이치대첩기념제가 열린다. 비석의 탁본은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이치대첩은 조선의 육군이 내륙에서 거둔 최초의 승전이며, 이치대첩을 계기로 일본군의 전라도 진출을 막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