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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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倉坪里 羅川 -祭 |
이칭/별칭 | 나천 거리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익 |
의례 장소 |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 나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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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거리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초사흗날 |
신당/신체 | 버드나무[음지말] |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에서 정월 초사흗날 거리신께 마을의 안녕과 질병 퇴치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창평리 나천마을은 양지말과 음지말 두 마을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이들 두 마을은 각각 정월 초사흗날 오후에 창평리 나천 거리제를 지낸다. 양지말의 경우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제사를 지내고 음지말은 남녀 가리지 않고 온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여 창평리 나천 거리제를 지낸다. 과거 나천마을 주민들은 산신제를 지냈었다. 그런데 산신제가 중단되면서 거리제가 마을 대표 제의가 되었다. 예전에는 산제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농사 풍년을 기원했고 거리제당에서는 재액과 질병 퇴치를 빌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리제만 지내므로 이 모든 소망을 거리제 때에 기원한다.
[연원 및 변천]
양지말과 음지말 이 두 마을의 제의는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내려오던 것으로 전한다. 실례로 1930년대까지 양지말 초입에 돌탑이 있어서 탑제를 겸한 거리제를 지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돌탑이 허물리면서 제의가 일시 중단되었고, 이후 여자들이 나서서 지금과 같은 형식의 창평리 나천 거리제를 재개하였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양지말의 거리제에는 의례와 관련된 표지물이 없다. 마을 전면 세 갈래 길에서 창평리 나천 거리제를 지낸다. 이에 비해 음지말 제장에는 200여 년 된 버드나무가 있다. 음지말 주민들은 이 버드나무를 신목으로 삼아 제사를 지낸다.
[절차]
양지말의 거리제는 제물 진설, 헌관[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헌주례, 주민 헌주례, 소지 올림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마을 소지는 이장이 올렸고 주민 소지는 참여한 주민 개개인이 직접 올렸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는데 이들은 여러 장의 소지를 들고 개개 가족을 호명하며 소지를 올렸다. 음지말의 거리제는 별도의 헌관을 두지 않고 제의에 참여한 주민들이 다 함께 헌주례를 하였다.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고 가구별로 술을 따라서 제단에 늘어놓은 뒤 주민 전체가 제단 앞에 죽 늘어섰다. 그리고는 그 중 한 사람이 “절 합시다.”라고 하면 다 함께 재배하였다. 이후 부녀회장이 마을 소지를 올리고 주민들은 각자 자신들의 소지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