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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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勝煥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기성 |
출생 시기/일시 | 190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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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임승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만세 시위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0월 6일 - 임승환 징역 1년 선고 |
출생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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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금산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임승환(任勝煥)은 1900년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행보는 분명하지 않다. 임승환은 1919년 당시 여러 지방에서 벌어지던 3·1운동 소식을 접하고 금산읍 상옥리에 살던 김학술(金學述)[일명 김용술(金用述)]과 함께 금산 읍내에서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22일 밤 김학술의 방에서 「금산경고(錦山警告)」라는 제목의 격문을 작성한 뒤, ‘금산청년대표자 주모자’라고 쓰고 김학술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금산면사무소에서 등사판을 빌려와 김종구(金鍾九)에게 150장을 인쇄하도록 하였다.
임승환은 3월 23일 금산면 장날을 이용하여 김민식(金珉植)·고찬복(高賛福) 등의 동지들과 함께 「금산경고」를 배포한 뒤, 오후 2시부터 김학술과 함께 만세 운동을 지휘하였다. 1919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