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200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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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吳碩奎 |
영어공식명칭 | Oh Seokgyu |
이칭/별칭 | 서오(瑞五),현산(峴山) |
분야 |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금산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거주한 조선 후기 효자.
[개설]
오석규의 본관은 해주이며, 자는 서오(瑞五), 호는 현산(峴山)이다. 수암 권상하가 ‘현산’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가계]
오석규는 해주 오씨 시조인 오인유(吳仁裕)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오산립(吳山立)이며, 할아버지는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자 효자로 정려된 오국헌(吳國獻)이다. 오석규의 아버지는 송시열의 문인이자 오국헌 등과 함께 해주 오씨 9효자로 정려된 오연휘(吳延輝)이다. 오석규의 부인은 노상검(盧尙儉)의 딸 교하 노씨이며, 슬하에 1남 4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오석규는 효자 오국헌의 둘째 아들인 오연휘의 장남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효행을 본받아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부모가 병에 걸리면 음식을 먹지않고 간호에 정성을 쏟았으며, 밤에는 혈서로 축문을 써서 기도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막에서 무덤을 지켰다.
[학문과 저술]
오석규는 어려서부터 소학(小學)과 통사(通史)를 공부하였으며, 우암 송시열과 수암 권상하의 문하에서 학문을 이어갔다.
[묘소]
오석규의 묘소는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 장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04년에 오석규를 비롯하여 할아버지, 아버지, 숙부, 후손 등 총 9명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