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36
한자 吳國獻
영어공식명칭 Oh Gukheon
이칭/별칭 중현(中賢),어은(漁隱)
분야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행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9년연표보기 - 오국헌 출생
몰년 시기/일시 1672년연표보기 - 오국헌 사망
성격 효자|문인
성별
본관 해주

[정의]

충청남도 금산 지역에 거주한 조선 후기 효자.

[개설]

오국헌의 본관은 해주이며, 자는 중현(中賢), 호는 어은(漁隱)이다. 송시열이 ‘어은(漁隱)’이라는 호를 지어주었으며, 권상하는 오국헌의 기문과 묘표를 지어주었다.

[가계]

오국헌해주 오씨 시조인 오인유(吳仁裕)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군자감 주부 오응(吳鷹)이며, 할아버지는 군자감 봉사 오억수(吳億壽)이다. 오국헌의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오산립(吳山立)이다. 아들은 오달휘(吳達輝), 오연휘(吳延輝), 오수휘(吳遂輝), 오일휘(吳逸輝), 오건휘(吳建輝)인데, 모두 효성과 우애로 소문이 나서 미곡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오국헌은 어려서부터 부모를 공경하여 먹을 것이 있어도 먼저 먹지 않고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면 지성으로 간호하면서 약을 먼저 맛보았고, 먹을 것을 확인하였다. 병세가 악화되면 집 뒷편에 단을 설치하여 자신이 대신 아프기를 매일 하늘에 기도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3년 동안 무덤을 지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효성스럽다고 칭찬하였다. 효종 연간에는 여러 차례 관직에 추천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통탄해 하며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학문과 저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의리를 강론하였다.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기 때문에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 『사서해의(四書解義)』2권, 『역계해의(易繫解義)』1권, 『잡저(雜著)』3권, 『유후귀감(遺後龜鑑)』3권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어은유고(漁隱遺稿)』5권만 전해지고 있다.

[묘소]

오국헌의 묘소는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 어은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오국헌은 1712년 민진원의 보고로 효자에게 하사하는 쌀을 받았으며, 승훈랑(承訓郞)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추증되었다. 1888년에는 가선대부(戶曹佐郞) 호조참판(戶曹參判)으로 품계를 높였으며, 1904년에는 5명의 아들과 손자 오석규(吳碩奎), 후손 오태증(吳泰增), 오태준(吳泰俊)과 함께 정려되었다. 정려는 금산 요광리 오국헌 정려라는 이름으로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요광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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