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624
한자 鄭湛
영어공식명칭 Jeong Dam
이칭/별칭 언결(彦潔),일헌(逸軒),장렬공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83년 - 정담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정담 김제군수 부임
몰년 시기/일시 1592년연표보기 - 정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90년 - 정담정려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690년 - 정담 병조참판 추증
부임|활동지 임진왜란 웅치 전적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산31-6
성격 무관
성별
본관 야성[영덕]
대표 관직 김제군수

[정의]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충청남도 금산군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웅치에서 맞아 싸우다 전사한 조선 전기 무신.

[가계]

본관은 영덕이고 자는 언결(彦潔), 호는 일헌(逸軒), 시호는 장렬(壯烈)이다. 고려 후기 시중을 지낸 정송(鄭松)이 시조이다. 할아버지는 정사교(鄭士僑)이고 아버지 정창국(鄭昌國)과 어머니 전의 이씨 사이에서 막내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북병사 이제신(李濟臣)에게 발탁되어 경원, 종성 등지에서 일어난 이탕개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다. 1583년 무과에 급제하여 회령도호부 판관, 경원도호부 판관 등을 지냈다. 1592년 청주목사로 임명되었다가 호남 지역 방어를 위해 김제군수로 전임되었다. 왜군은 금산성을 점령하고 전주를 공격하고자 움직였다. 조선에서는 금산에서 전주로 이르는 중요 길목인 웅치이치를 지키고자 하였으며 정담웅치를 방어하는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웅치 전투에서 마지막 방어선을 담당하였던 정담은 치열한 백병전 끝에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1629년에 건립된 영해 향현사(鄕賢祠)에 배향되었다. 정담 문중에서 보관하는 교지(敎旨)에 따르면 1593년 9월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90년 갈암 이현일의 건의로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정려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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