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200578
한자 慶州 李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70년 - 이서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616년 - 이서 사망
입향지 경주 이씨 입향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주 이씨 집성지 -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하류리지도보기
성씨 시조 이알평(李謁平)
입향 시조 이서(李曙)|이시(李時)

[정의]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거명을 중시조로 하며, 이서·이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금산군의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이씨(慶州 李氏) 금산군 입향조는 이서(李曙)[1570~1616]와 이시(李時) 형제이다. 이서는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가 병들었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도록 하였고, 상을 당해서는 묘막을 짓고 정성을 다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다. 이서의 큰아들 이유택(李惟澤)은 현감, 둘째 이유부(李惟孚)는 참봉, 셋째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는 승지가 되었고, 넷째, 이유익(李惟益)은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다섯째, 이유겸(李惟謙)은 현감을 지냈다. 현종조에 이유태가 승지가 되자 이서는 가선대부 이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로 추증되었고, 이서의 부인은 정부인에 증직되었다. 이유태는 금산의 대표적인 서원인 성곡서원(星谷書院)의 사액을 청할 때 매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이유태가 금산 지역 사족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원]

경주 이씨 시조는 신라의 건국 신화에 나오는 사로(斯盧) 6촌 중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전해지는 표암공(瓢巖公)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찬한 이제현(李齊賢)의 묘지문(墓地文)에 신라 후기 소판(蘇判) 벼슬을 지낸 이거명 이후의 세계(世系)가 기록되어 있어 이거명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입향 경위]

이시가 금계 한씨(錦溪 韓氏)와 혼인하여 처향인 금산군 금성면 하신리로 내려오면서 동생 이서도 함께 내려와 터전을 잡았다. 이시는 현재의 금성면 하신리에 터를 잡았고, 이서금성면 하류리[유곡]에 터를 잡아 금산의 경주 이씨 터전을 잡았다.

[현황]

2015년 통계청에서 발간한 『인구주택총조사보고서』-성씨·본관 편에 따르면, 금산군에 살고 있는 경주 이씨는 1,826명이다. 금산군 금성면하신리하류리에 경주 이씨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

금산군 금성면 화림리 서당말에 경주 이씨 재실인 영모재가 있고, 금성면 하신리에 1959년 이규헌(李圭憲)이 지은 경주이씨세거기적비(慶州李氏世居紀績碑)가 세워져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